▲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17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항공 보잉777 여객기가 미사일에 피격, 추락한 우크라이나 동부 그라보보 인근 현장을 구조요원들이 살펴보고 있다. 이곳은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교전 중인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의 통제지역으로 양측은 이번 격추에 대해 자신들의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를 격추한 미사일의 발사주체를 놓고 반군 소행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가운데, 양측 간의 진실게임 양상의 공방전이 가열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와 미국 등은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 혐의를 우크라이나 반군 세력에 돌리고 있는 반면 러시아와 반군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직후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 세력을 지목했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을 "테러 행위"라고 부르며 국제 공조 수사를 촉구했다.

우크라이나 내무장관 고문인 안톤 게라셴코도 "여객기가 (친러시아) 반군이 쏜 부크(Buk)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됐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또한 분리주의 반군과 러시아 공작원이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을 논의했다고 주장하면서 증거로 전화통화 도청자료 2건을 공개했다.

도청자료에서 우크라 반군 대원은 러시아 정보 장교에게 "비행기가 페트로파블로프스카야 광산 인근에서 격추됐다"며 "처음 발견된 희생자는 민간인 여성"이라고 보고했다. 다른 자료에서는 반군 사령관이 "기뢰부설 부대가 항공기 한 대를 격추했다"고 말했다.

또 한 반군 대원이 "민항기인데다 여성과 아이들이 가득하다"고 말하자 "어쩔 방법이 없다. 지금은 전쟁상황이다"라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 말레이시아 항공 여객기 피격. 말레이시아항공 보잉 777 여객기가 17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미사일에 맞은 뒤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298명이 전원 사망했다. /AP=연합뉴스

미국 정부도 반군이 러시아제 부크를 발사해 말레이시아 여객기를 피격했다고 사실상 결론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를 공식 확인하지는 않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증거 보전과 즉각 조사를 요구했다. 

이와 관련, 미국 국방부 관계자 두명은 우크라이나 반군이나 러시아가 말레이시아 여객기를 우크라이나 정부군 화물 수송기로 오인해 피격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보 분야의 한 관계자는 이번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소행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그는 정부군은 이와 같은 미사일 능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미사일로 지목된 부크는 러시아제 이동식 중거리 방공 시스템이다. 트럭에 실어 이동하는 1970년대 구형 미사일로, 고도 25㎞ 목표물까지 격추할 수 있다.

반면 러시아와 반군은 우크라이나 정부에 말레이시아 여객기 추락의 책임을 돌리고 있다. 반군 측은 "정부군이 말레이시아 여객기를 격추했다"며 "우리는 사거리가 3∼4㎞인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만 갖고있다"고 주장했다. 피격된 말레이시아 여객기는 당시 순항고도 10㎞에서 운항 중이었다.

이어 "미사일 발사 시스템이 있어도 이를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함께 반군은 우크라이나측이 내놓은 도청 자료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비전문적인 선동전의 일환"이라고 반박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말레이시아 여객기 참사에 러시아 방공 미사일이나 전투기가 관여했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내각 회의에서 "사고가 난 지역 국가가 이 무서운비극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며 "우크라이나 동부에 평화가 정착됐거나 전투행위가 재개되지 않았더라면 이 비극도 없었을 것"이라고 우크라이나 정부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 말레이시아 항공 여객기 격추. 17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항공 보잉777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상공서 미사일에 피격됐다.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은 서로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AP=연합뉴스

러시아 언론은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여객기 추락 지점 부근인 도네츠크 지역에 27대의 이동식 발사대를 갖춘 부크 미사일 포대를 운영 중이라고 전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이날 반군 측과 현지에 국제조사단을 파견키로 합의했다. 반군 측도 휴전을 한 후 국제조사단의 사고 현장 방문을 허용하기로 했다.

반군은 사고기의 추락 현장에서 블랙박스를 회수했으며 러시아의 연방항공위원회(IAC)에 보내 내용을 분석할 것이라고 밝혀 추락 원인이 규명될지 주목된다.

이번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이 반군의 소행으로 드러나면 반군을 지원해온 러시아에 대한 압박이 전 세계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외교전문지인 포린폴리시는 여객기를 누가 격추했는지와 관계없이 이번 사건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게임 체인저'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모스크바 카네기센터 전문가는 "반군이 러시아제 미사일을 쐈다는 증거가 있다면 서구뿐 아니라 전 세계가 태도를 바꿔 푸틴을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날 오전 7시(현지시각)께 말레이시아 여객기 추락 현장에서 121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당국은 승객 283명과 승무원 15명 등 탑승자 29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사망자가 154명으로 가장 많았고 말레이시아와 호주 등 최소 9개 국적의 승객들이 탑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인 승객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