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金東錫·1913~?)은 인천시 남구 숭의동에서 태어나 중구 경동 싸리재에서 성장했다. 기차로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학문을 닦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수필 '해변의 시' '낙조' '시계' '토끼' '나의 돈피화' '나의 서재' 등에는 아내와 함께 찾은 월미도, 어릴 적 싸리재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쓴 시 '어촌의 밤'과 '바다'의 공간적 배경도 인천으로 추정된다. 그가 1942년까지 인천에 거주한 것 등을 고려하면 시와 수필 상당수를 인천에서 썼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김동석은 해방 이후 잡지 '상아탑'을 창간하며 정력적으로 문학비평 활동을 했다. 그의 문학비평을 대표하는 글로는 '순수의 정체-김동리론'(신천지, 1947년 12월) 등이 있다.

그는 문학가동맹 등에서 적극 활동했으며, 1948년 4월에는 '서울타임스' 특파원 자격으로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당 및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취재하기도 했다.

김동석 연구자인 이희환 박사는 "(김동석은)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상 속에서 답답한 속내를 서정시와 생활수필로 표현했다"며 "해방 후에는 좌익과 우익을 가리지 않고 사심 없이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했다.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은 "김동석은 해방 직후 맹활약했다. 하지만 활동 기간이 3~4년에 불과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김동석의)문장이 좋다. 해방 직후에 비평집을 낸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하지만 김동석은 평론집을 2권이나 내고 수필집도 냈다"고 했다. 이어 "지금 다시 읽어봐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고 했다.

/목동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