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오후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를 방문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유족들 대전·광화문 미사
면담 행사·편지 전달 계획
특별법 파행정국 돌파 희망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별한 환영행사 없이 단출하게 한국 땅을 밟았지만, 환영단에 포함된 세월호 참사 유족들의 고통을 위로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가 가져온 평화와 용서, 화해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보를 이어갔다.

교황은 이날 청와대에서 가진 연설에서 "한국의 평화추구는 이 지역 전체와 전쟁에 지친 전 세계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우리 마음에 절실한 대의"라며 "사회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정치인들의 노력을 주문한 것으로,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각종 대형사고로 지친 한국인들에게 첫 날부터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특히 단원고 희생자들의 유족에게도 커다란 위안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이번 방한 일정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을 각별히 챙겼다.

유족들은 14일 서울공항 교황 방한 환영식에 참석한 것을 비롯해 15일 대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도 교황과 면담한다. 서울 광화문에서 농성중인 유족들은 16일 시복미사에 참여한다.

교황을 향한 이들의 기원은 간절하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에 대한 교황의 위로와 진실규명을 위한 조력이다.
"억울한 저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단원고 고(故) 박성호(17)군의 어머니 정혜숙씨는 15일 교황과의 면담에서 가슴 속에 있는 말을 담아낸 편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지난 3월 교황 방한이 확정되자 가족 모두가 천주교 신자인 정씨 가정은 흥분에 휩싸였다. 가족 모두 시복미사에 참여하기로 약속했지만,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가족의 소박한 꿈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정씨의 아들 박군은 사제가 되는 것이 꿈이던 예비신학생이었지만,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정씨는 손편지를 통해 "평화를 지키는 분에게 '우리 가족의 평화가 이렇게 깨졌습니다. 평화를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세요'라고 전하고 싶었다"며 "국회의원은 물론 대통령께 편지를 써도 밝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분께 도움을 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故) 김주아양의 어머니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힐 수 있게 해달라는 바람을 전달할 예정이다. 김양 어머니는 "국회, 광화문 등에서 단식도 하고, 시위를 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타인의 삶에, 슬픔에 무관심했는가를 알게 됐다"며 "정부와 국회에 아무리 외쳐도 알 수 없는 진실에 대해 교황님께 호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에 앞서 14일 서울공항 교황 방한 환영식 행사에서 고(故) 남윤철 단원고 교사의 부친 남수현씨 등 가톨릭 신앙을 갖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 4명을 만났다.

이날 한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환영 인사를 하던 중 눈물을 흘리자 교황은 자신의 왼손을 가슴에 얹으며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희생자 가족을 위로했다. 교황의 위로를 받은 희생자 가족은 울음을 터트렸다.

남수현씨는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직접 교황님을 뵙고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진정한 위로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32일째 천막농성 중인 희생자 가족들은 교황 방문이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이루는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은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집전되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30여명의 희생자 가족이 참석하며 미사 후 희생자 가족 13명이 교황과 면담을 한다"고 밝혔다. 또 유 대변인은 16일에 있는 광화문 시복미사에는 희생자 가족 600명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농성 천막은 교황방문 소식으로 다시 활기를 찾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천막 내부에 설치된 스티로폼 침상에 앉아 오랜 노숙과 세월호 특별법 파행으로 지친 희생자 가족들은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들고 온 교황의 행보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윤수경·유은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