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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원평화전망대에서 바라 본 비무장지대 안의 모습. 후삼국시대를 풍미한 후백제 궁예의 도성이 비무장지대 수풀 속에 가려져 있다. 사진은 월정역, DMZ에 버려진 노동당사, 지뢰, 버려진 열차, 태봉국 도성을 합성했다. |
그뤼네스반트 DMZ 무장시설 동독 위치
희귀생물 서식 공론화 거쳐 공유화 진행
내일의 한반도 DMZ 세계평화 희망공간
DMZ는 세계 평화의 상징이다.
Demilitarized Zone의 약자인 DMZ는 한국어로 바꾸면 '비무장지대'라는 단어로 말할 수 있다.
한반도의 DMZ는 서쪽으로 예성강과 한강 어귀의 교동도(喬棟島)에서부터 개성 남방의 판문점을 지나 중부의 철원·양구를 거쳐 동해안 고성까지 이르는 155마일(약 250㎞)의 군사분계선(MDL)을 중심으로 남북 각각 2㎞씩 4㎞ 폭의 완충지대를 말한다.
면적으로 따지면 DMZ는 약 992㎢다.
이 공간은 남북간 군사적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1953년 7월27일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협정'을 체결하면서 생긴 공간이다.
정전 협정에 의해 이 공간이 만들어질 당시 남북한, 그리고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더이상의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군대를 주둔시키지 않는 비무장 공간으로 설정했었다.
시간이 지나며 오늘의 DMZ는 각종 중화기가 전진 배치 되어 있는 중무장지대가 되었지만 과거 DMZ는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비무장된 공간으로 시작됐다.
정전 협정에 의해 이 공간은 남한과 북한의 법이 적용되지 않는 공간이다.
DMZ는 정전 협정에 의해 군사정전위원회의 감독을 받는 공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DMZ가 설치된 곳은 한국 외에도 있었다. 동서독으로 나뉘어져 수십년간 분단 국가로 살아야 했던 독일도 그뤼네스반트라는 DMZ가 설치되었었다.
그뤼네스 반트는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국경이 그어지고 10여년이 지난 1961년 동독 정부가 자유를 갈망하는 자국민의 탈출을 막기 위해 베를린 장벽을 비롯해 동서독 국경에 철조망과 감시탑 등 수많은 무장시설물을 설치하면서 탄생했다.
한반도의 DMZ가 휴전선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를 두고 남북한 모두에 설치된 것과 달리 독일의 그뤼네스 반트의 무장시설물은 동독지역에 위치한다는 점이 한반도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독일은 통일 이후 그뤼네스 반트 지역의 토지의 사유화가 허용되기도 했지만 그뤼네스 반트 지역에 희귀 조류와 생물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는 게 알려지며 사회적인 공론화를 거쳐 토지 공유화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DMZ의 개발과 보존 문제를 논의하며 독일의 그뤼네스 반트를 사례로 들면 혹자들은 남북으로 나뉘어졌던 예멘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하지 않냐는 의견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예멘은 1967년 구소련의 지원을 받은 남예멘이 분리 독립을 하면서 남북으로 나뉘어졌지만 한반도와 독일처럼 비무장지대를 설치하지 않았다.
오늘의 DMZ는 제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여러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공간이다.
남북간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비무장지대는 전쟁을 억제하는 하나의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고, 이 공간을 바라보며 전쟁의 참혹함을 다시한번 떠올리게 된다.
과거의 DMZ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시대 한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던 공간이었다.
휴전을 논의하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경선을 만들기 위해 전략적인 요충지를 마련하기 위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공간이 DMZ다.
하지만 내일의 DMZ는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인들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희망의 공간이다.
61년간 인간의 발길이 끊어지며 원시 자연 그대로 남아 있는 DMZ는 전세계인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수 있다.
하지만 DMZ 주변이라는 이유로 개발에 제약을 받았던 사람들에게는 또다른 변화의 공간이 될 수 있다.
평화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는 한반도의 최근 정세를 바라보며 개발과 보존의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는 DMZ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할 기회를 가져볼까 한다.
/김종화기자·사진/김종택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