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 눈부신 성장뒤엔
출산·자살률 꼴찌의 그림자
청춘, 연애·결혼·출산 포기
열악한 노동환경은 쳇바퀴

가장 중요한 '사람'을 잊다



올 상반기처럼 절망이 사회를 뒤덮은 때가 또 있을까. 인생에 딱 한번 뿐인 고교시절, 수학여행을 떠났던 어린 생명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되고 연이은 화재로 잠자던 노인들과 아침 출근길의 시민들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어디 그 뿐인가. 부질없이 사라져 간 생명들에 대해 반성할 시간도 없이 20살 꽃다운 청년이 폭력과 학대 속에 피멍들어 죽는 황망한 사건까지 또다시 사회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우리 사회는 흔히들 선진사회로 진입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우리는 OECD국가 가운데 무역규모 기준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고, OECD에서는 올해에도 4%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짧은 시간에 눈부시게 도시들이 성장했고, 그 안의 삶도 최첨단으로 변신해 선진국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빛나는 경제적 발전 뒤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이면은 안타까움을 넘어 처참하기까지 하다. OECD국가 중 출산율 꼴찌와 자살률 1등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 현실이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 안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거부하고 자신의 생명 또한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교육은 또 어떠한가. OECD국가 중 고등학교 졸업 비율이 98%에 달해, 평균인 82%보다 16%p나 높고 전문대학 이상 교육을 받는 비율도 단연 1등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고급인재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 땅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불행하다.

지난해 OECD 23개 국가를 대상으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23위, 꼴찌를 차지했고, 청소년 자살비율도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이렇게 비싼 수업료를 내고 고등교육까지 받았지만, 청년들은 사랑도, 우정도, 모정도 포기하는 '취업사이보그'로 전락했다. 취업의 문이 좁아지면서 준비기간이 길어지자 청년들은 젊은 시절의 꿈같은 연애활동을 포기했다. "여자 혹은 남자친구 사귈 시간 있으면 토익책 한자라도 더 봐야된다"는 말이 대학가에서 유행어처럼 통용될만큼 사랑을 잊어갔다.

사랑을 포기하니, 결혼도 늦어졌고 아이를 갖는 것은 굉장한 사치처럼 여겨졌다. 요즘 이런 세태에 더해 청년들은 친구들과의 우정도 포기해가고 있다. 취업이 어려워 안으로만 숨고, 취업해도 직장에서 인정받기에 급급하다보니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여유조차 찾기 어려워진 것이다. 젊음이란 열망은 세상살이의 비정함 속에 무참히 짓밟혔다.

노동환경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 노동환경을 일컬어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 가장 적은 효율을 내는 노동환경'이라고 손가락질 당하길 수십년이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아직까지도 OECD 주요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는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데, 2위를 차지한 멕시코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꼭 수치로 환산해보지 않더라도 비열한 노동환경의 풍경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작 한달 100여만원의 돈을 손에 쥐기 위해 남의 차를 정성껏 주차해도 차에 난 작은 상처 하나 때문에 주차요원의 가슴엔 대못이 박히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 택배물류작업자들은 오늘도 목숨값을 담보로 위험한 현장에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부르짖으며 분신자살을 선택했던 전태일 열사가 살던 시절과 다를바 없이 여전히 노동자의 안전보다 비용이 우선인 작업환경 속에서 불안에 떨며 일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돌아보면, 세월호 침몰사고, 윤일병 구타사망사건 등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대형 사건들의 원인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우리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이 사회의 근간이 되는 '사람'을 잊었다.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귀중한 가치를 어느샌가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창간을 마주하며,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사회의 '사람'사는 세상을 되짚어 보며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