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주차 중 외제차 범퍼 손상
200시간 일해야 받을 돈 '변상'
'미소' 강요받는 화장품 판매원
택배상하차, 허리 펼 시간없어
노동법따라 인권 철저히 보호를

# 대리주차 요원보다 소중한 외제 승용차

지난 6월 경기도 소재의 한 수입차 서비스센터. '쿵!'하는 소리와 함께 대리주차를 하던 원승준(가명·33)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원씨가 하는 일을 지켜보던 수입차 센터직원의 얼굴도 급속도로 붉어졌다. 벤츠를 주차하던 원씨가 후진하다 다른 외제차를 들이받은 것. 원씨는 머리와 목에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보다 찌그러진 벤츠의 뒷범퍼가 더 걱정이 됐다.

원씨는 하루 10시간을 일하면서 8만원을 받는 대리주차 일을 하고 있었다. 서울 소재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오랫동안 취직이 되지 않아 급한 마음에 수입차량을 센터 주차장으로 옮기는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 첫날부터 원씨는 자신이 몰던 차와 다른 차 앞 범퍼가 부딪히는 사고를 냈다. 가벼운 사고라 생각했지만 두 차량의 범퍼 수리비는 원씨의 한달 급여를 가뿐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원씨는 "200시간 노동의 대가가 독일에서 왔다는 고철판 두개를 교체하는 비용도 되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몸은 괜찮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원씨는 자동차가 무서워졌다. 잔뜩 주눅이 든 채 차를 몰다가 1주일 뒤 다시한번 승강기 문에 차를 들이받았다. 이를 보던 서비스센터 직원은 "야, 이××야. 차라리 자동차 말고 너를 긁어버리란 말이야! 그게 더 싸겠다"라고 고함을 질렀다.

원씨가 낸 사고는 최근 한달 반 사이에 이 센터에서 네번째 사고로 기록됐다. 지난번에 근무했던 대리주차요원은 두 번의 사고를 낸 후 정신적 부담과 고된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월급도 받지 않은 채 도망갔다.

일을 시작한 지 2주가 지나자 원씨는 오른발을 질질 끌면서 일했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하루에 차량 수십대의 브레이크를 조심스럽게 밟다보니 다리 근육이 경직된 것이다. 게다가 원씨가 월차를 내고 병원에 다녀오자 서비스센터 측은 원씨를 무단결근처리 해버렸다. 한 고참 센터직원은 "왜 그런 일로 병원을 가냐. 그리고 그 돈을 왜 회사에 청구하냐"는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두 달만에 일을 그만둔 원씨는 "더 이상 인격보다 자동차 철판을 우선으로 여기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며 "하다못해 직원들이 내 이름을 불러줬다면 덜 서운했을 텐데, 일을 그만두는 순간까지 그들은 나를 '원씨'라고 불렀다"고 토로했다.


# 미소에 시달리는 화장품 판매원

지난 4일 성남시 분당구의 한 화장품 매장. 손님의 입장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자마자 박채연(가명·20·여)씨는 반사적으로 환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잠시라도 인사가 늦으면 어김없이 점장에게 주의를 받기 때문이다.

박씨가 일하는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때로는 휴일없이 주 7일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항상 서있기 때문에 박씨의 다리는 쉽게 퉁퉁 붓는다. 이미 박씨의 다리는 열 장 이상의 파스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짙은 향수와 긴바지로 파스의 흔적을 감추려고 하지만 박씨 근처에 가면 파스냄새가 코를 찌른다.

박씨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점장도 아닌 손님들이다. 조금이라도 서비스가 어설프면 곧바로 점장에게 불만이 접수되기 때문이다. 지난달에 찾아온 한 손님은 구매한 화장품 때문에 피부트러블이 생겼다며 박씨에게 개봉한 상품을 환불해 달라고 '진상'을 부렸지만 박씨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점장은 멀리서 박씨보고 알아서 하라는 듯 구경만 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박씨의 발걸음이 느려지거나 표정이 굳어지면 점장은 금세 곁을 지나가면서 "걷지말고 뛰어다녀!"라던가 "왜 표정이 그래? 항상 웃으면서 손님 맞으라고 했지?"라며 독설을 날린다. 매일 감정노동을 하다보니 박씨는 일터만 벗어나면 웃음을 잃어버렸다.

박씨는 "하루는 너무 힘들었는지 얼굴에 크게 뾰루지가 난 날이 있었어요. 아침에 뾰루지를 감추려다가 실패했어요"라며 "결국 그대로 출근했는데 점장이 얼굴을 보자마자 호통을 치더라고요. 얼굴 상태가 좋지 않은 직원이 화장품을 팔 때 고객에게 신뢰를 주겠냐며. 그 땐 정말 뛰쳐나가서 울고 싶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손님이 조금 뜸하면 30분간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박씨는 직원대기실에서 바닥에 구겨져 잠을 청한다. 쉬는시간 모두 잠을 잘 수 없다. 일을 시작하기 5분전에 다시 화장을 고치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어 화사한 얼굴로 손님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조금이라도 힘든 표정을 지으면 사람들이 '20대는 항상 열정이 넘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네'라고 핀잔을 줘요"라며 "20대도 분명 힘들 수 있는데 항상 적극적이고 웃음을 강요하는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언제 손이 끼일지 모를 택배 상하차

지난달 성남시 한 택배물류센터. 요란한 컨베이어 벨트 소음속에 수십명의 인부는 아무말 없이 크고작은 박스들을 트럭에 싣거나 분류하고 있었다. 지난 7월부터 일을 시작한 송찬준(가명·29)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송씨의 임무는 5번 라인에서 마산 집하센터로 보낼 짐들을 25t 트럭에 쌓는 것. 상차를 위해 송씨를 포함한 두 명의 인부가 달라붙지만 하루 3만여개를 처리해야 한다.

물건을 싣다보면 허리가 끊어질듯한 고통을 느끼지만 잠깐이라도 허리를 펼 시간은 없다. 잠시라도 숨을 돌리면 컨베이어 벨트에 박스들이 잔뜩 밀려 폭발하듯 물건이 공중으로 튀기 때문이다.

송씨는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잠시 딴생각을 하며 상자를 집다가는 목장갑이 컨베이어 벨트에 딸려들어가 손이 끼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목장갑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들어가 비명을 지르며 장갑을 벗곤 한다.

하루는 손이 벨트 틈속으로 들어갈 뻔해 물류라인 전체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 송씨는 "지난달 같이 물건을 싣던 인부 하나가 컨베이어 벨트에 손이 들어가서 응급실로 실려갔다. 다행히 골절은 면했지만 단 2초라도 늦었다면 손을 제대로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항상 안전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송씨를 포함한 작업인부들은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다. 택배인부의 근무시간은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정해진 시간내에 모든 물건을 발송해야한다. 단 한개의 물품이라도 예외는 없다.

때로는 두 배 가까이 늘어난 물량 때문에 손이 보이지 않게 트럭에 물건을 쌓는 날도 있었다. 그 다음날 송씨는 골병이 든듯 뼈마디마다에 통증을 느끼며 일어설 수 없었지만 그날 밤에도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이라도 결근하면 바로 해고당하는 일용직이기 때문이다.


# 사람이 우선해야하는 노동환경

노동환경에서 '사람'보다 자본이나 효율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고려대학교 경영학부 강수돌 교수는 오늘날 사회경제가 이윤 극대화를 최고 목표로 돌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강 교수는 "한국은 1990년 이후 신자유주의 물결이 불어닥치고 특히 IMF 경제위기 국면을 거치면서 비정규직, 청년실업 문제가 심해지면서 노동 인권이 더 열악해졌다"며 "기업과 국가가 경쟁논리를 더욱 밀어붙이기 때문에 효율이나 서비스, 자본들이 인권보다 우선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개선책에 대해 강 교수는 "첫번째로 정부의 주도로 현존하는 노동관계법에 따라 인권을 철저히 보호해야한다"며 "두번째로 노동자가 연대를 통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강 교수는 "해외에서도 노동자 인건비 따먹기 식의 경영방식은 초일류기업이 될 수 없다"며 "기업이 먼저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면서 창의적인 제품이나 서비스, 품질 경영 등을 통해 기업 발전을 도모해야한다"고 밝혔다.

/공지영·김범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