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액션 플랜 없는 문화관련법
정부는 문화기본법에 이어 지역문화진흥법을 제정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즉 정부가 문화기본법에 따라 5년마다 문화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면, 광역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라 기본계획을 실행할 시행계획을 수립토록 한 것이다.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국경제를 부흥시켰듯이,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이 명문화한 문화진흥 5개년 계획은 문화 르네상스를 발원시킬 수 있을까.
문화 전문가와 현장종사자들은 회의적이다. 이흥재 원장(추계예술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은 "법과 제도를 통해 문화진흥의 기틀을 만들 수 있다"며 문화진흥을 위한 법제화에는 동의하면서도 "내용이 없는 법문은 무가치하다"고 비판한다.
이 원장은 "문화의 날을 만든다든지(문화기본법), 재단의 역할을 강조한다든지(지역문화진흥법)와 같은 조문은 현재의 문화진흥법을 보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분명한 법의 실익이 없는 법을 만들어 (정부가)성과인 것처럼 자랑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현 정부가 만든 두 법이 실행면에서는 공허하다는 지적이다.
김이환 이영미술관 관장은 "문화기본법이나 지역문화진흥법은 알맹이가 없다"며 "문화의 가치를 격상시키는 분위기 조성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김 관장은 문화기본법이 정한 '문화가 있는 날'에 대해 "국공립 박물관, 미술관뿐 아니라 사립 박물관, 미술관의 수익과 그 수익을 바탕으로 한 예술의 재창출을 막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문화가 있는 날 전국의 문화예술 현장을 무료나 염가로 개방하라는 정부의 문화정책이 반문화적이라는 것이다.
두 법 모두 문화진흥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책무를 엄숙하게 선언하고 있지만, 재정대책은 "예산 범위에서 필요한 만큼"이라거나 "지역문화진흥 재정의 확충에 필요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선에서 얼버무려 놓았다.
# 정부의 문화진흥 역주행
지난 4월 경기문화재단을 비롯한 전국 13개 광역자치단체 문화재단이 정부에 일제히 반발하고 나선 사건이 있었다. 중앙 재정에 예속된 지역문화재단이 일제히 한목소리로 정부를 성토하고 나선 건 유례없는 일이다.
사건의 발단은 기획재정부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진흥기금을 광역·지역발전특별회계로 이관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다. 한국문화예술위에서 시·도 문화재단에 분배해주던 문예진흥기금을, 정부가 특별회계에 포함시켜 지방자치단체에 직접 나누어주겠다는 발상이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문예진흥기금은 문화예술계를 지원하는 유일한 안정적 재원이다. 7개 예술분야에 지원하는 지출 총규모는 올해 1천868억원이다. 정부예산에서 보면 발톱의 때도 안 되는 소액이지만, 지역문화재단에는 생명수에 버금가는 금쪽 같은 돈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회수해 자치단체에 나눠줘 단체장의 호주머니 돈으로 쓰겠다니, 아무리 눈칫밥을 먹는 입장이더라도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기재부 말고서라도, 현 정부는 문예진흥기금을 아예 폐지해 정부예산으로 문예진흥 사업을 진행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문화예산은 기본적인 속성상 수혜자 중심으로 편성돼야 하고 집행돼야 맞다. 하지만 정부는 창의성, 독창성, 지속성이 생명인 문화의 속성을 외면하고 '진흥'에 급급해 문화예산 자원의 독점 분배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1997년 영국 토니 블레어 내각은 젊은 영국을 지향하는 문화정책 '쿨 브리타니아'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크리스 스미스를 문화미디어체육부 장관에 임명했다. 그는 쿨 브리타니아 문화정책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복권을 발행해 예술기금을 확충했다.
그는 한 문화정책 연설에서 "막대한 양의 기금이 셀 수 없이 많은 컨설턴트의 주머니로 들어가기보다는 창의적이고 문화적인 활동에 쓰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복권 기금을 빌딩을 세우는 데가 아니라 (문화예술계)사람과 활동을 지원하는 데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문화예술 자원은 문화행정이 아니라 문화예술인의 활동을 직접 지원하는 정책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견주어 보면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을 만들어 놓고도, 문화예술인들이 자율성을 갖고 쓸 수 있는 알량한 금액마저 정부의 국고로 빼돌리려는 정부의 행태는 이해할 수 없다.
# 경기도 문화진흥의 명암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문화부문 예산을 도 재정의 3% 수준까지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최근 경기문화재단이 발표한 '경기도 문화예술진흥 중단기 종합발전계획'에 따르면 올해부터 2018년까지 남 지사의 문화재정 3% 공약이 단계적으로 실현되면 5년간 총 1조7천368억원의 문화관광예산이 확보된다. 예산 확대로 인한 추가확보 예산은 5천963억원이고, 당장 내년부터 3%로 확대하면 금액은 훨씬 늘어난다.
이 같은 예산 확대의 의미는 경기도가 비로소 경기도 문화정체성을 위해 쓸 돈이 생긴다는 데 있다. 올해 경기도 문화재정은 약 2천253억원으로 일반회계 예산의 1.54%. 재정의 대부분은 문화관련 기관 및 시설의 운영비이다. 여윳돈은 중앙정부의 문화사업 수행을 위한 매칭펀드 예산으로 소비된다.
실제로 경기도가 문화정체성을 갖기 위한 사업비는 전무한 실정인 셈이다. 남 지사의 문화재정 3% 공약은 이런 의미에서 경기문화의 출발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도 문화계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지사의 공약을 이행하는 과정은 지난해 보인다. 정책과 예산의 우선순위를 다투는 현실에서 문화계가 소외되는 현상이 하루 아침에 개선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예술계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김이환 관장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김 관장은 "문화정책의 질적 변화는 정부나 지자체의 수장들이 문화계와의 접촉 기회를 늘리고 접촉면을 다면화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경기문화재단 산하 경기문화재연구원은 본연의 업무인 문화재 발굴 및 연구업무가 거의 마비된 상황이다. 발굴 사업에서 민간기업과 완전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발굴사업이 대규모 토목 및 건설사업 현장에서 발주되다 보니, 문화재 발굴 보다는 건설이익을 추구하는 발주처의 입맛을 맞추어 주는 경쟁에서 늘 뒤지게 마련이다. 즉 매장 문화재 발굴이라는 공익이 건설이익에 밀리는 상황을 방치하는 문화행정인 셈이다. 누구의 이익을 우선할 것인지 문화현장의 사람을 만나 들어봐야 하는 것이다.
최근 경기도 연정논의 과정에서 불거진 도 산하기관장 청문회도 같은 맥락이다. 청문회 대상 기관에 경기문화재단이 포함되자, 도 문화계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경기도 문화정책을 현장에서 지휘하는 문화재단 대표가 정쟁을 피하기 힘든 자리가 될 경우 문화현장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 지사의 문화재정 3% 공약과 점점 열악해지는 문화행정의 퇴보. 경기도 문화는 이 같은 명과 암 사이에서 부흥과 답보의 기로에 서 있다.
/민정주·유은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