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은 지난 1997년 도내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수원시 화성사업소'가 17년째 보존관리를 하고 있다. 사업소는 그동안 화성의 아름다운 경관을 활용한 문화콘텐츠 사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해왔다. 반면 현장문화유산에 대한 보존관리는 체계적이지 못했다.
2년마다 담당자가 바뀌는 조직에서 화성 보존에 관한 정보데이터를 축적하고 전문인력을 키우기란 쉽지 않다. 사업소는 보존관리에 필요한 정보를 옛날 건축설계가 담긴 '시방서'와 외부 전문가들의 조언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따른 문제점은 종합점검 결과에 그대로 드러났다. 수원화성 내 화서문, 북안문 등 4개 문화재는 기단부와 축대에 균열이 생기고 기울어져있다. 문화재청의 보존관리 5개 등급 중 4번째 D등급을 받은 이유다.
사업소 관계자는 "원체 노후상태가 심했고, 지난 해 12월부터 보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17년 전 오로지 수원 화성만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인 사업소가 이제야 성 벽돌 교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문화유산 전문가는 "이제부터라도 체계적인 보존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조시대의 화성'을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라며 문화재가 갖고 있는 진정성을 잃을까 우려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존관리 예산이 지난해와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수원화성 보존관리비는 81억9천여만원으로 지난해 173억3천만원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당초 문화재청에 130억원 수준의 사업비를 요청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의 재정난으로 문화재보존관리예산이 감축됐고 타 문화재 등에 보존예산이 집중 투입돼 상대적으로 수원화성은 피해를 입게 됐다.
#보존관리 인프라의 첫발 '남한산성'
다행히도 가장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은 사정이 다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남한산성은 중국과 일본 축성법의 영향이 남아 있어 동아시아 산성 건축술 교류의 증거일 뿐 아니라 7~19세기 유적이 골고루 발견돼 축성기술 발달단계를 잘 보여준다"고 등재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남한산성이 인류가 후대에 보존 전수할 만한 세계적 유산으로서의 완전성과 진정성을 두루 갖췄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등재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진정성을 담고 있는 원형보존 상태와 등재 이후 내실있는 보존관리 인프라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은 등재 이후 보존관리를 주제로 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논의했다. 또 5년간 남한산성세계유산등재 추진업무를 맡았던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로 명칭을 바꾸고, 5년간 누적된 자료를 이어받아 지속적인 보존정책을 펴나가기로 했다.
도 역시 남한산성 보존관리를 위한 조례안을 준비하고 있다.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의 조두원 박사는 "국제기준에 따라 현장보존을 위한 전문가를 배치하고 현장 관리자들에게 꾸준한 보존관리 교육을 진행해 원형보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남한산성은 보존관리에 중점을 맞춘 혁신적인 인프라를 형성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남한산성의 뛰어난 보존관리를 높이 평가하며 국내 문화유산의 보존정책 기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문화유산 보존정책의 나아갈 방향
세계문화유산 보존관리를 위한 전문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장기간 업무를 수행할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현재 국내 보존관리담당자는 2년마다 자리를 옮겨 문화재 관리경력과 전문성이 30년이 넘도록 한 문화재를 관리하는 해외 세계문화유산기관 담당자와 비교해 관리능력이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우리도 보존관리 담당자를 한 곳에 오랜 기간 일할 수 있게 해 문화재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아울러 국제기준을 바탕으로 한국만의 보존정책을 세워야 한다. 주변국가에서 문화별 다양성을 담은 보존원칙을 발표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은 무형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나라(奈良) 진정성에 관한 문화'를 발표했고 지난 2003년 중국은 문화유산보존원칙을 담은 정책을 발표했다. 우리도 국내 정서와 토양에 맞는 문화유산 보존관리체계를 세워야 한다.
문화유산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세계문화유산의 보존관리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원형보존'을 위한 정의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국대학교 지리학과 최재헌 교수는 "세계문화유산은 기본적으로 '원형보존'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복원'이라는 것은 원형상태의 진정성을 잃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새로 만드는 '재건'사업을 '복원'사업으로 헷갈리지 않도록 '원형보존'의 정의 확립 교육을 해야 한다.
최 교수는 "국내 최다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경기도가 등재 이후의 문화유산 관리가 더 중요하다"며 "앞으로 어떻게 원형보존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은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