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중 막내인 최 할머니는 지난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마련해 준 작은 아파트에 새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최 할머니는 "따뜻한 물도 나오고 좋기는 한데 도시가스 요금이 비싸 걱정"이라고 푸념했지만 한결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뺏벌을 다시 찾은 최 할머니는 자신이 매일 드나들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그날을 회상했다. 5명의 할머니가 아옹다옹하기도 하고 서로 의지하며 거처했던 판잣집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최 할머니가 처음 뺏벌에 들어온 것은 1970년대 후반 뺏벌의 전성기라 불리던 시절이었다. 말 못할 마음의 상처를 안고 경상도에서 혈혈단신 올라 온 그녀는 부모와 형제 뒷바라지에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돈을 모아 고향으로 보냈다. 당시 뺏벌은 클럽이 골목마다 들어설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상가들도 주로 기지촌 여성과 미군을 상대로 영업했고 클럽을 비롯해 세탁소, 양품점, 음심점 등이 기지촌 거리를 빼곡히 채웠다.

뺏벌은 낮과 밤이 따로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였다. 밤이면 미군들이, 낮에는 한국인들이 번갈아 이곳 상가들의 매출을 올려줬다. 한국인들은 당시 시중에서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일명 '미제'를 구할 수 있어 이 곳을 자주 찾았다. 워낙 수입이 좋다보니 돈이 있어도 기지촌 상권에는 아무나 입점할 수 없었다. 상가들은 사실상 독점권을 누리며 미군들의 달러를 벌어들였다.

최 할머니는 이 무렵 뺏벌에 발을 들였다. 밖에선 '양공주', '양색시'라 손가락질 했지만 뺏벌내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특권이 보장됐다. 뺏벌의 부흥에 힘입어 최 할머니도 꽤 많은 돈을 벌어 여동생 두명을 중학교까지 졸업시켰다. 하지만 나중에 가족들이 그녀가 기지촌 여성이란 사실을 알고는 연락을 끊어버렸다고 한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다.


기지촌 여성들은 최 할머니처럼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았다. 최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다 일찍 세상을 떠난 김순옥(가명) 할머니는 6·25전쟁 중 남쪽으로 내려와 어릴때부터 식모, 직공 등 닥치는 대로 일하다 사고로 한쪽 시력을 잃었고 결혼 후에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유산까지 하는 아픔을 겪었다.

뺏벌에 들어와서 미군병사를 만나 잠시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불임이란 이유로 버림받고 말았다. 이처럼 뺏벌은 1970년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성들이 몸을 던졌던 곳이다.

뺏벌은 지금도 곳곳에 전성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최 할머니가 최근까지 살았던 집으로 가는 골목에서도 쉽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가정집으로 변한 옛 클럽들, 담장마다 흐릿하게 남아있는 클럽의 이름들, 기지촌 여성들이 지내던 쪽방, 업종은 바뀌었지만 당시 세탁소, 음식점 등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뺏벌이 쇠망의 길로 접어든 것은 1990년대 중반. 국내에 반미감정이 격화되면서 미군들의 영외 출입이 제한되고 미군부대 이전설이 나돌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의정부의 대부분 기지촌은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뺏벌에도 불황의 그늘이 드리워지자 상인들이 하나둘 뜨기 시작했고 문을 닫는 클럽도 늘어났다.

지난 2003년에 나온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은 뺏벌에 결정타를 날렸다. 이 계획에 따르면 캠프 스탠리가 오는 2016년까지 이전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뺏벌은 이후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고 기지촌으로서의 생명을 사실상 마감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업종을 바꾸든지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주민들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뺏벌에는 외국 이주민들이 터를 잡아갔다. 싼 집세에 가난한 외국 이주민들이 모여든 것이다. 젊은 외국 이주민들이 들어오면서 다시 활기를 찾는 듯했지만 이번에는 뺏벌이 통째로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


원래 뺏벌의 주인은 전주 이씨 지파인 모 종중인데 1960년대 주민들에게 임대료를 하고 건축과 거주를 허용했던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땅값이 오르자 임대료도 올라갔다. 2007년에는 8배까지 치솟자 주민들이 이에 반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종중의 손을 들어줬다.

분쟁은 격화됐고 땅 주인인 종중도 물러서지 않았다. 분쟁 조정에 나선 법원은 오는 2018년까지 자진철거를 강제 조정했다. 주민들은 이 기한까지 모두 이곳을 떠나야 하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수십년동안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아왔던 주민들은 당장 떠날 곳도, 또 떠날 여력도 없다. 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정부와 의정부시를 상대로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최 할머니도 얼마전까지 여기에 적극 동참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의정부시, 모두 재정적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밤이 없다'란 말이 나돌 정도로 화려한 시절을 보낸 뺏벌은 수많은 기지촌 여성들의 한을 보듬은 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정들었던 옛집을 둘러보고 뺏벌을 나서는 최 할머니는 "한때 이 곳 사람들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살았는데 그때는 마을이 지금처럼 사라질지 아무도 생각못했다"며 "이제라도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따뜻한 물 나오는 조그마한 보금자리라도 얻어 다행"이라며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 싶은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다.

의정부/윤재준·최재훈·공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