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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권 포기 외톨이 생활
건강한 국가 발전 걸림돌
"시간이 지날수록 포기하는 것만 늘어나네요."
통계청이 지난달 13일 '7월 고용동향'을 발표했다. 7월 취업자는 2천597만9천명으로, 전년 같은 달 대비 50만5천명(2%)이 늘어났고 전체 고용률도 61.1%로 지난해보다 0.7%포인트 상승했다. 이렇게 굵직한 수치들만 보자면 우리나라의 고용시장은 순풍을 탄 돛단배와 다름없다.
하지만 청년층만 따로 놓고 보면 상황은 순식간에 달라진다. 청년 실업률은 8.9%로 전월 대비 0.6%포인트가 늘었다.
여기다 공식 집계에 잡히지 않는 수십만명의 불완전취업자와 취업포기자의 수를 합치면 청년 실업률은 30%대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뿐 아니라 학자금 연체율(5.21%, 2012년말 기준)도 가계대출 연체율(0.81%)의 6.4배에 달하고 있어 취업 후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세대'는 이미 옛말이 됐다. 3가지도 모자라 인간관계까지 포기해야 취업할 수 있다는 '4포세대'가 최근의 추세다.
다른 사람과 만나 고충을 나누는 시간조차 취업준비에 투자하지 않으면 직장 문턱을 넘을 수 없다는 이 말은 청년들이 가진 취업에 대한 공포를 그대로 대변한다. 이들은 누구도 만나지 않고 혼자서 하루를 보내거나 취업과 관련된 행위 이외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취업을 위해 개인의 행복권을 포기해야 하는 지금, 우리 시대 청년들을 돌아본다.
# 취업을 위해 은둔형 외톨이 생활
방송사PD를 꿈꾸는 박창우(29·가명)씨는 지금 소위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다. 편의점에 담배를 사러가는 시간 10분이 박씨가 세상 밖에 나오는 시간의 전부다.
경남 밀양에 고향집이 있지만 안산 소재 대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상경해 졸업한 지금까지도 고향을 등지고 고시원에 살고 있다. 한때 과 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밝은 성격을 지녔지만 지금은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 받는 것조차 단절한 상태다. 모두 취업을 위해서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는 박씨는 오전 내내 토익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 900점이 넘는 성적을 갖고 있지만 번번이 서류면접에서 떨어지다보니 지금의 점수로는 안심이 되지 않는다.
이어지는 오후 시간은 더욱 바쁘다. 각 방송사의 주요 프로그램을 모니터하고 신문의 헤드라인을 스크랩한 뒤 온라인 스터디로 기획안을 첨삭받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간다.
하지만 박씨는 취업을 위해 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이 하루가 취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을 갖고 있다.
박씨는 "하루에 말 한마디도 안 하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연출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면서도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거나 여유를 부리면 마음도 불편하고 부모님께도 죄를 짓는 것 같아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 고학점 따기 위해 도움되는 친구만 교제
수원의 한 대학교에 다니는 김소연(22·여·가명)씨는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라곤 딱 3명뿐이다. 지방의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니며 학업 경쟁에 일찍 눈 뜬 김씨는 학점을 잘 받기위해 입학하자마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 3명을 모았다. 그 후 김씨와 친구들은 대학생활 내내 매학기초 시간표를 똑같이 짜는 방식으로 모든 수업을 함께 듣고 있다.
이들의 작전이 가장 빛을 발하는 건 조별과제를 할 때다. 보통 조별과제는 처음 만난 학생들끼리 의견을 모아 진행하기 때문에 의견충돌이 일어나거나 불성실한 학생이 생기기 일쑤다.
그러나 김씨와 친구들은 조별과제때마다 같은 조를 편성해 자료수집과 정리, 발표까지 미리 역할을 정해뒀다. 이로 인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음은 물론, 시간도 적게 걸려 남은 시간은 각자 스펙을 쌓는데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방식으로 김씨와 친구들은 3학년 2학기인 지금 4.5점 만점에 평균 4.3점이라는 높은 학점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김씨는 희망하고 있는 금융권 취업을 위해 토익은 물론 관련 자격증도 여러 개 취득한 상태다. 이런 완벽한 학과생활 뒤에도 김씨는 종종 허무함을 느낀다.
김씨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이지만 학교나 취업 이외에 사적인 이야기는 잘 나누지 않는다"며 "잘 살기 위해 최고로 효율적인 대학생활을 했다고 자부하지만 지금이 잘 살고 있는 삶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 취준생 되는 것 두려워 퇴사 고려도 못 해
용인 소재의 중견기업에 다니는 이현수(30·가명)씨는 직장 내 뿌리 깊게 박힌 군대식 문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2년차 직장인이지만 부서내 막내인 이씨는 매달 영업실적을 채우는 것도 힘들지만 막내라는 이유로 해야 하는 각종 잔심부름과 '머리는 뭐 하러 달고 다니냐'는 식의 막말 등 업무 외적인 부분이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씨의 삶에서 개인적인 시간은 거의 없다. 명색이 주5일 근무제라지만, 이씨의 부서는 주말까지 포함해 주6회 근무하며, 회식도 잦은 편이다. 회사에 들어온 이후 도통 이씨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갖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숱하게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했던 이씨지만, 늘 결론은 한결같다. 아무리 직장생활이 힘들어도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이다. 토익과 자격증 등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의 공인인증기간이 이미 끝나 퇴사할 경우 처음부터 다시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한다.
가뜩이나 3년동안 백수생활을 하며 어렵게 취업한 그는 취업준비에 대한 공포를 여전히 갖고 있다. 이씨는 "기성세대가 가족 부양 걱정에 퇴사욕구를 참았다면 나는 스펙을 다시 쌓아야 한다는 두려움에 퇴사욕구를 참고 있다"며 "경력직으로 이직할 수 없는 1~2년차 사원이라면 누구나 겪는 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대인관계마저 포기한 채 취업에 몰두하는 현실에 대해 우려섞인 목소리를 나타내고 있다.
한양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전공 김정기 교수는 취업을 위해 인간관계마저 포기하는 세태가 향후 건강한 국가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사회적 제도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사람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이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며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것은 인생 중 가장 큰 부분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직장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인간관계는 필수적"이라며 "학교 생활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적응이 이뤄지지 않으면 직장 내에서도 적응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무엇을 위한 취업준비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김 교수는 경색된 취업시장이 청년들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탈락과 좌절을 겪는 것에 익숙해진 청년들이 스스로를 극한 상황으로 내몰아 안도감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단기적 목표를 잡고 성취하는 버릇을 들이면서 좌절감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며 "또한 국가는 취업 자체가 쉬운 목표가 될 수 있도록 고용시장 개선에 끊임없이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준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