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현지 투자은행(IB)은 한국을 현금자동인출기(ATM)로 표현한다.

지난 7월 홍콩 현지에서 투자 관계자로부터 들은 말이다. "언제든지 돈(투자금)을 찾을 수 있어 안정적이지만 수익이 높지 않다"는 뜻이다.

한국은 우수한 기술력과 인적 자원 등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차별화돼 있지만 투자 매력은 낮다는 게 이곳 투자자들의 인식이라고 한다.

중국에 유입되거나 중국에서 외부로 나오는 투자금의 절반 이상이 홍콩을 경유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ATM' 발언을 한국에 대한 대외 투자국의 전반적 인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중국은 가파른 양적 성장을 거쳐 질적 전환을 꾀하며 해외 투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이 열린 2008년 이후 선별적 투자유치시대를 열었다. 2011년에 외국인투자산업지도목록을 정해 고도의 기술력을 갖췄거나 투자 규모가 큰 업종의 투자를 지원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중국 정부 공식경제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국 투자 유치기업수는 2006년 4만여개에서 2013년 2만여곳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반면 투자금액(FDI)은 630억달러(2006년)에서 1천176억달러(2013년)로 급증했다.

한국이 유치하려는 화교 자본의 상당 부분이 중국에 유입되는 것도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투자자들에게 한국과 달리 중국은'기회의 땅'이다.


이같은 중국의 변화상을 알고 그에 따른 한국의 대응 전략을 모색하는 목적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인 전문교육(디플로마 과정)을 통해 지난 7월 1~7일 중국 베이징, 빈하이, 톈진, 상하이, 홍콩의 주요 기관을 방문했다. 중국이 풍부한 배후 시장을 둔 제조업을 기반으로 투자 유치 산업의 고도화를 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베이징 현대 사옥에서 만난 중소기업진흥공단 이병식 BI운영팀장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중국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와서 투자하기만 하라'는 식이었는데 베이징올림픽 이후 달라졌다"고 말했다.

중국이 과거 투자자들에게 주던 땅값, 세제, 인건비 혜택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이병식 팀장은 "중국은 요즘 하이테크 기술 투자를 유치하려고 한다"며 "고급 기술력을 우선시하고 투자 규모도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은 각 지역에 조성된 '경제 특구'가 선도하고 있다. 정부 주도로 중장기 계획 아래 차근차근 개혁·개방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정권의 변화에 따른 '투자 변수'가 크다면, 중국은 일관된 정책 추진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베이징에서 약 200㎞ 거리에 있는 톈진 빈하이신구는 제조업, 항만물류, 레저 기능을 갖춘, 2천270㎢의 대형 신도시로 개발되고 있다.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200개 이상이 빈하이신구에 입주해 있다.

중국에 진출한 조선, 항공, 설비산업 업체의 3분의1가량이 빈하이신구에 자리잡고 있다. 연간 1천300만TEU의 물동량을 처리하는 톈진항의 물류 인프라를 기반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곳이다.

최근에는 크루즈항 인근에 인공해수욕장을 만들고, 그 주변에 숙박·레저·상업시설을 개발하는 일에 최근 공을 들이고 있다. 1994년 싱가포르와 중국이 합작 협약을 맺고 시작한 쑤저우공업원구는 대부분의 부지 개발을 마무리했다. 싱가포르는 제조업 생산기지 확장을 위해서, 중국은 도시개발·투자유치 노하우를 익히는 목적으로 쑤저우공업원구 개발을 추진해왔다.


쑤저우공업원구 김명철 아태투자촉진국 차장은 "기업 유치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적이었다"며 "입주기업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강조했다. 현재 장쑤성에 있는 외자은행의 3분의2가 쑤저우공업원구에 위치해 있다. 또 금융·서비스 기관 212개소, 외국기업 지역본부 46개소가 쑤저우공업원구에 있다.

중국은 작년 9월 상하이 자유무역시범구를 출범하고 2020년까지 이 도시를 국제금융센터로 육성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구상을 바탕으로 상하이에서 금융 서비스 시장 개방을 준비하고 있다.

상하이 자유무역시범구는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시험대로 조성된다. 은행, 보험, 국제 선박 관리, 원양 상품 운송, 게임기·오락기 판매, 법률, 신용 조사, 인재 알선, 투자 관리, 엔지니어링·설계 등의 분야에서 국제적 수준의 규제 완화와 개방이 이뤄지게 된다.

상하이는 1990년 국가급 신구로 지정된 푸둥신구를 기반으로 자유무역시범구를 추진한다. 푸둥신구는 2002년 1단계, 2010년 2단계 개발을 완료하면서 국제금융센터로서의 골격을 완성했다.

푸단대 경제학과에서 세계경제부문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노지은 씨는 "상하이는 중장기적으로 홍콩이 지닌 국제금융도시의 위상을 상하이로 이전시키려고 하고 있다"며 "상하이는 현재 물류 중심이지만, 위안화가 국제외환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면 중국의 금융 중심지로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경제의 비약적 성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변화상에서 동북아 중심도시를 지향하는 한국의 경제자유구역이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규모의 경쟁'은 피해야 한다.

해외 투자자들에게 십수억명의 인구를 둔 중국 시장과 한국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중국은 최근 10여년간 최저임금을 매년 10~20%씩 상승시켜 소비 여력을 진작하고 내수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규제를 완화·철폐하는 것만 능사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중국 역시 과거와 달리 제한된 업종에서만 규제를 없애는 선택적 개방 정책을 펴고 있다. 한국 경제자유구역 투자유치 담당자들은 무엇보다 투자를 이끌어올 수 있는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하는 게 시급하다.

인베스트홍콩 사이먼 갈핀 청장은 "타 도시의 성공 모델을 모방하는 것보다 자기 나라와 도시의 장점과 조건을 먼저 살피는 게 중요하다"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두가지 포인트를 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코트라에 소속돼 중국에서 20년 이상근무한 경력이 있는 경성대 곽복선(중국대학) 교수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국은 우리보다 외자 규제가 많지만 투자자들은 '시장성' 때문에 중국을 선택한다"며 "규제완화, 우대정책, 시장성 제고, 홍보 촉진의 방향에서 정책을 모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래기자
그래픽/성옥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