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를 앞두고 알알이 영근 알밤이 결실의 계절인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임열수기자
선선한 바람 불기시작하는 이 가을
우리 가슴엔 저마다 '노란리본'
사람이 중심, 진정한 소통 필요

가족 확인에서 '인간존중' 시작
마음의 내비게이션을 켜고
소중한 이들의 품으로 출발…


추석입니다. 예년보다 빨리 다가선 명절이지만 절기의 위엄은 대단하군요. 양광은 성하의 맹렬함을 잃고 어느덧 잔잔해져, 덕분에 자연의 이목구비는 하루하루 명료해집니다. 아침 저녁 바람에 서린 한기는 널브러진 심력을 곧추세우는 죽비 소리 버금가네요.

이 가을, 우리는 마음에 노란 리본 하나씩 매달고 서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깨닫고 망연자실했지요. 하루하루 삶을 질주하느라 스쳐버린 미세한 구멍과 균열들이 거대한 악마의 손을 잉태해 우리를 집어삼킬 줄, 누가 상상이나 했나요.

지금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누구', 이 주어를 찾고자 여야 정당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을 빼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사 발생 그 즈음으로 돌아가볼까요. '동시대의 책임'을 자탄하는 각성이 있었습니다.

오직 사욕만 추구한 기업가 유병언, 학생들을 선실에 앉혀놓은채 저들만 탈출한 선원들, 구조현장을 장악하지 못한 우왕좌왕한 공권력, 유언비어로 혼란을 가중시킨 파렴치한들, 정확한 보도가 아닌 엉뚱한 주장으로 상황을 왜곡한 일부 언론들.

무엇보다도 서해훼리호 사건 이후 여야가 교대로 정권을 바꿔가며 20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똑같은 자살운항을 방치한 안전불감증의 대물림. 누구 하나 책임자를 지목하기 힘든 참사 발생의 사슬구조에 모두가 스스로 가슴을 쳤더랬습니다. 이런 각성이 정치적 공방으로 희석된다면, 허망한 일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이 시대의 대한민국과 우리가 '사람'을 놓친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지금처럼 살 것인가' 자문했고, '아니다'는 결론에 이르렀지요.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합의할 때입니다. 합의에 이르기 위한 성찰과 대화와 연대가 필요합니다. 합의의 결과는 당연히 인간존중입니다.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라고 합니다. 정보통신기술의 혁명으로 모두가 휴대전화 하나 들고 세상을 주유하는 시대라는 얘긴데, 실제로 우리의 유목은 행복한가요. 하루에 수십억건의 문자가 발신되지만 의미있는 소통은 몇 건이나 될까요.

소통의 순도만 놓고 보면 한번의 포옹이 수십번의 통화나 수백건의 문자보다 훨씬 낫습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수천장의 사진보다는 액자에 담긴 사진 한장이 훨씬 많은 이야기를 속삭입니다.

디지털 영토에서 무수한 사람들과 소통하지만 인간적 공감능력은 퇴화한 듯합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저장할 수 있지만 가치있는 소장목록을 만들기 힘들지 않으신가요.

아들, 딸과 무수히 많은 문자를 나누었지만, 눈물 젖은 편지를 건넨 기억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저를 휴대전화로만 소통하고 기억한다면 비참할 것 같은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인간존중 사회의 출발은 가족의 확인에서 비롯돼야 할 겁니다. 사돈의 팔촌까지 챙기고 이웃을 사촌으로 여겼던 혈연적·공간적 유대, 이제 와 생각해보면 공동체를 떠받쳐온 한민족 연대의 원천이었습니다.

이번 추석, 모처럼 마음의 내비게이션을 켜고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잠겨들면 어떨까요. 대체휴일까지 보태져 한결 여유로운 시공간, 사람과 사람이 만나 위로와 사랑을 나누는 인간적 의식으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사람의 구원자는 사람이니까요.

그럼 추석 연휴 무탈하게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