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앞에 장사없다. '뜨는 별'이 있으면, '지는 별'이 있게 마련이다. 흔히 스포츠를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9회말 2아웃 역전 홈런'처럼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반전의 짜릿함이 있다.

반전없는 드라마는 재미없다. 또 각본이 좋아도 익숙한 배우가 나오면 드라마가 식상해질 수 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혜성처럼 등장하는 반짝 스타에 더 열광할 수밖에 없다.

신성의 등장 자체가 반전의 드라마다. 장차 이들이 써내려갈 드라마 각본도 무궁무진하다. 뜨는 별 앞에 지는 별은 자연스레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밀려난다. 팬의 심정에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도 주인공보다 더 인기있는 조연들이 많다. 슬퍼할 필요가 없다. 지던 별은 다시 뜨는 별이 될 수도 있다. 그게 또 반전이다. '관록이냐', '패기냐'. 스포츠에서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초반부터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누가 웃고, 누가 울었을까.

#인천 AG 최고 빅매치, 그를 주목하지 못했다!

'마린보이' 박태환(25·인천시청)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호령한 한국 수영의 간판 스타다. 그가 물살을 가를 때마다 한국 수영사는 새로 쓰여졌다.

인천 아시안게임 '최고 빅매치'는 박태환의 주종목인 경영 400m 결승이었다. 중국 쑨양(23)과의 라이벌전이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쑨양의 승리. 하지만 정작 가장 많은 서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는 따로 있었다. 은메달을 차지한 '하기노 고스케'(20·일본)였다.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인천 아시안게임 수영 4관왕을 달리고 있다. 특히 앞서 200m 결승에서 박태환과 쑨양의 양강 대결구도 전망을 깨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세계가 깜짝 놀랄 일이었다. 8년 전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3관왕을 차지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17세 소년 박태환처럼 말이다.

#한국 사격, 걸출한 새 영웅을 만나다!

사격에서도 대이변이 연출됐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 2관왕인 '한국 사격의 영웅' 진종오(35·KT)가 지난 20일 50m 권총 개인전 결선에서 7위로 조기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다행히 다음날인 21일 남자 10m 공기권총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구겼던 체면을 살렸다. 이 단체전에 주목하지 못한 '한국 사격의 신성' 고교생 특급 사수가 숨어 있었다.

바로 한국 사격 대표팀 막내인 김청용(17·흥덕고)이었다. 그는 이날 남자 10m 권총 개인전 결선에서 깜짝 금메달을 추가했다. 첫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선수로 첫번째 2관왕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대선배인 진종오는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다"며 막내의 몸에 태극기를 둘러줬다.

#이제 2인자라 부르지 마라!

2인자들의 반란도 거세다. 펜싱 여자 사브르 이라진(24·인천 중구청 )이 한국 펜싱 첫 금메달을 획득하며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이자 학교 선배인 김지연(26·익산시청)의 그늘에 가려 있던 '이인자'의 설움을 털어내며 아시아 정상에 우뚝 선 것이다.

생애 첫 개인전 우승이기도 하다. 이라진은 4년 전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단체전 은메달의 주역이었지만 늘 관심 밖에 있었다. 국제대회 개인전 정상 타이틀과 인연이 없었던 탓에 '단체전 선수'란 꼬리표가 따라붙어 다녔다.

'여자 펜싱의 대들보' 남현희(33·성남시청)란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국제대회 개인전 출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선수도 있다. 다른 종목에선 은퇴도 바라볼 그의 나이, 올해로 서른이다.

여자 플뢰레 개인전 금메달을 딴 전희숙(30·서울시청)이 그 주인공이다. 주로 단체전에서 뛴 그는 정작 우승을 해도 관심은 온통 남현희에게 쏠렸다.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남현희가 출산으로 불참한 지난해 6월 아시아펜싱선수권에서 전희숙은 당당히 개인전 정상에 올랐다. 돌아온 '엄마 검객' 남현희는 강했다. 지난 7월 같은 대회에서 전희숙은 결국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희숙의 승리. 아시안게임 개인전 3연패를 노리던 남현희는 전희숙에게 져 동메달에 그쳤다.

#첫 AG 무대, 금빛으로 장식하다!

사격은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길 종목으로 꼽혔다. 하지만 의외의 곳에서 금이 나왔다. 인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강화도 고인돌체육관에서 우슈 기대주 이하성(20·수원시청)이 첫 금빛 낭보를 전해오며 깜짝 스타로 발돋움했다.

여자 유도 70㎏급에서 금메달을 딴 김성연(23·광주도시철도공사)은 국가대표로 선발된 지 불과 2년 밖에 되지 않아 첫 아시안게임 무대를 금빛으로 장식했다. 어릴 적부터 두각을 나타낸 조정 여자 싱글스컬 김예지(20·포항시청)는 한국 조정의 아시안게임 역대 두 번째 금메달을 따며 기대주에서 아시아 최강자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