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우이동 마을공동체 '삼각산 재미난 마을'에서 아이들이 다함께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공동육아모임서 공방 등 영역 확대
이웃 화합으로 따뜻한 마을 만들어
서울시 지원받는 마을 654곳 달해
정보지도·선거로 '활기' 불어넣어

문화시설 많은 강남 비교적 저조
道 수원·시흥 등 일부지역만 밀집

# 차가운 나의 도시…마을공동체로 온기를 더하다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던 최모 주부는 2년전 직장을 그만뒀다. 날이 갈수록 자라나는 아이를 엄마품으로 키우고 싶어 어렵사리 결단을 내린 것이었지만 '초보엄마'는 서툴렀다.

이웃 또래 엄마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직장생활과 육아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다보니 힘에 부쳤다. 학원에, 어린이집에 맡겨진 채 어둠이 깔리도록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지쳤다.

대책이 필요했다. 우선 다섯 엄마가 모였다. 1달에 한번 동네 골목에서 아이와 엄마가 손을 잡고 뛰어놀았고, 다함께 모여 꽃꽂이를 했다. 인근 문화센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역사·성교육을 받기도 했다. 회원은 2년새 20명 가까이로 불어났고 그만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친구도 늘어났다.

서울시 영등포구의 한 마을공동체 사례다. 우리 엄마·옆집 아이 가릴 것 없이 발을 맞추다보니 팍팍한 도시살이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공동체 회원들은 입을 모은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서울은 각박한 도시의 상징이다. '송파 세모녀 사건' 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웃과 주변에 무관심한 도시민들의 모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서울은 이웃간 화합을 통해 '우리 동네'를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만들려는 주민들의 노력이 되레 가장 돋보이는 곳중 하나이기도 하다.

서울의 대표적인 마을공동체로 자리매김한 강북구의 한 공동체모임은 1998년 IMF 위기로 대한민국 전체가 얼어붙었을때 탄생했다. '어려울때일수록 힘을 모으자'며 마을 공동육아 모임으로 첫발을 내디뎠지만, 17년째를 맞은 지금은 카페며 공방, 도서관에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성공사례가 늘어날수록 '우리 동네도 해보자'는 목소리 역시 곳곳에서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동대문구에서는 구내 마을공동체 사업 참여 주민들이 한데 뭉쳐 마을축제를 열었다. 구 전반의 '마을축제'를 기획하고 싶었지만, 다소 규모가 작은 모임 단위에서는 선뜻 추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서초구에서도 시내 잘되는 마을공동체를 찾아다니며 비법을 배우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속에 올해 서울시의 지원을 받는 마을공동체는 654개에 이른다. 지난달 기준 성북구에만 52개, 은평구에만 41개의 마을공동체가 활동중이다.

# 지자체 역할도 마을공동체 활성화에 한몫

서울시내 마을공동체 확산 분위기에는 지자체 지원도 한몫을 했다. 서울시가 올해 마을공동체 12개 분야 사업에 투입하는 예산은 133억원에 달한다. 지난 2012년 조례를 제정한 후 마을공동체 사업을 지원중인 서울시는 단순한 예산 투입을 넘어 다양한 정책으로 공동체 사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20일 시내 마을공동체들이 꾸린 예술창작소·북카페·공동육아커뮤니티 등을 집약해놓은 '마을정보지도' 서비스를 선보였다. 우리 동네에 어떤 이웃들이 있는지, 이웃들과 어떤 일을 할수 있는지를 주민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서비스다.

앞서 지난 8월에는 마을공동체 관련 정책 아이디어를 겨루는 '서울마을선거'를 열었다. 8월20일부터 9월14일까지 3주간 가장 훌륭한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한 주민을 서울마을시장과 부시장·마을반장 등으로 선정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직접 해당 정책의 실행방안을 마련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 서울 장충동 마을공동체 '족발쿠키'에서 주민들이 다함께 쿠키를 만들고 있다.
#'따복마을' 앞세운 경기도, 도시민들의 마음 녹일까

마을분위기의 '붐업' 분위기에도 서울시는 고민이 많다. 공동체 활동을 위한 장소 임차료가 저렴하고, 오래 거주한 이웃들간 유대감이 끈끈한 강북지역에서는 공동체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반면, 강남지역에서는 비교적 저조하기 때문이다. 성북구내 공동체는 50개를 웃돌지만, 강남구는 6개에 불과하다.

주민들간 유대감이 부족하고 문화시설이 잘 돼있어 공동체를 꾸려 문화·교육수요 등을 충족시킬 필요를 상대적으로 덜 느낀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지역별 맞춤형 공동체 사업을 발굴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도시와 농촌이 어우러져 지역간 특성차가 더 큰 경기도 역시 여러 지역 공동체가 활동중이지만, 아직까지는 수원·시흥 등 일부 지역에 밀집된 모양새다.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건물내 쉼터를 육아·문화생활 공간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거의 비슷하게 나타난다.

수원 영통동의 한 아파트는 관리동에 북카페를 만들어 수익금으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강좌를 진행하고, 시흥 정왕동의 한 아파트도 관리동 공간을 작은 도서관으로 개조해 매달 주민들을 위한 아나바다 장터, 노래자랑 등을 연다.

좀더 살기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뭉친 것은 뜻깊은 일이지만, 도시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궁극적으로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낼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보다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도내 지역 곳곳에 뿌리내리도록 도가 힘을 실어주겠다는 남경필 도지사의 '따복마을' 공약이 성공을 거두려면 지역별 특성에 맞는 공동체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강기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