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산 자락 아래 펼쳐진 이천의 중심지는 풍수에서 볼 때 아쉬움이 많이 남는 도시다. 그래서일까? 이천은 내놓을 만한 인물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문 고장이다. 하지만 이천에서도 남쪽편에 자리한 장호원읍, 모가면, 율면, 설성면 일대는 예부터 무관과 관료 등 인물이 꾸준히 배출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천은 도시나 마을의 주산으로 꼽힐 만한 산들이 설봉산과 원적산, 도드람산, 백족산, 마국산 정도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설봉산과 원적산, 도드람산은 풍수에서 볼 때 그리 좋은 산으로 보기 어렵고, 백족산과 마국산은 모양이 좋은 산에 속해요. 그러다 보니 백족산이 있는 장호원읍이나 마국산이 있는 모가면 일대에서 그나마 인물들이 배출되는 것이지요."

조광 선생의 설명을 들으며 취재팀은 장호원읍으로 향한다. 충청북도 음성군과의 경계에 위치한 장호원읍은 예부터 충청도와 강원도 내륙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로 번성했던 곳이다. 지금도 장호원읍의 도심지역은 비슷한 규모의 다른 도시에 비해 오가는 이들이 많아 북적이는 편이다.

장호원읍 시내에서 음성군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너면 오갑산 자락을 타고 극동대학교와 강동대학교가 자리해 있다. 장호원과 음성에 젊은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셈이다.

장호원의 주산 격인 백족산은 장호원 시내 남서쪽에서 시가지를 굽어보고 있다. 402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청미천이 휘감아 돌아간 안쪽에 장호원 시가지를 바라보며 오뚝하게 자리해 쉽게 눈에 들어온다. 백족산쪽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장호원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보세요. 주산인 백족산도 모양이 좋을 뿐 아니라, 주변으로 토체와 영상사와 일자문성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지요. 게다가 장호원읍은 청미천이 휘감아 돌아간 곳에 자리해 있으니, 산과 물이 모두 좋은 곳이라 할 수 있어요. 이렇게 풍수가 좋은 곳에서 인물이 나오는 법입니다."

백족산 앞에서 조광 선생의 설명을 들으며 장호원 일대를 둘러싼 산들을 둘러보니, 인물을 배출한다는 토체가 여럿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서도 시내에서 동쪽편으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멋지게 생긴 토체가 듬직하게 자리해 있다. 조광 선생도 "아주 잘생긴 토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장호원 일대는 예부터 무관(武官)이 많이 배출됐다고 한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어재연 장군의 생가를 찾기로 했다. 어재연 장군 생가는 이천의 가장 남쪽 끝자락인 율면 산성리에 위치해 있는데, 19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옛 초가집이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초가집이지만 안채와 사랑채, 광채를 갖춘 제법 큰 집이다. 큰길에서 조금 들어가 팔성산 자락 아래에 자리한 생가를 둘러보며 조광 선생이 감탄을 쏟아낸다.

"비록 초가집이지만 아주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어요. 팔성산이 위압감을 주지도 않으면서도 듬직하게 뒤를 받치고, 좌청룡 우백호가 집을 잘 에워싸고 있네요. 특히 좌청룡이 힘있게 집앞까지 뻗어나가 집 주인이 명예를 높이게 될 것을 알려주고, 집의 정면에 기가 막힌 토체가 솟아 있어 높은 사람을 상대하는 자리에 오를 것임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렇게 풍수가 좋은 곳에서 자란 사람은 자연의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이 되는 법이지요."

집 안팎 곳곳에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서 있는 어재연 장군 생가를 둘러본 후 취재팀은 차를 북쪽으로 몰아 모가면으로 향했다. 모가면은 높이 445m의 마국산 자락 아래에 둥지를 틀었는데, 한적하고 평화로운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주산 격인 마국산 아래 산내리 일대는 안동 권씨 후손들이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고 살아왔는데, 그곳에서 만난 권균 묘역(산내리 산 31의 1, 이천시 향토유적 제16호)에서 안동 권씨 가문의 위세를 실감할 수 있었다.

충성공 권균(1464~1526)은 우의정을 지낸 조선시대 문신으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했으며, 1506년 중종반정 때 정국공신으로 영창군에 봉해지기도 했다. 형조판서, 예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두루 거쳐 1523년 우의정에 오른 인물이다.

마국산에서 뻗어내린 힘찬 맥을 타고 조성돼 있는 권균 및 안동 권씨 가문의 묘역은 명당의 조건을 그대로 갖췄다.

"이곳 산내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달구지가 겨우 들어오는 시골마을이었어요. 그런 곳에서 이렇게 좋은 명당을 찾아낸 것이 놀랄 정도네요. 길고 힘차게 뻗은 맥도 뛰어나지만, 왼쪽으로 겹겹이 둘러친 청룡이나 오른쪽으로 시원하게 뻗어내린 백호가 모두 기가 막혀요. 안동 권씨 자손들의 부와 명예가 어떠할지 눈에 보이는 듯하네요."

500년 가까이 된 잘생긴 소나무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권균의 묘역 맞은편으로는 정성들여 지은 별장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산내리 도로가 포장이 되면서 이곳에 큰 별장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는데, 부를 가져다 준다는 영상사의 형태가 뚜렷한 마국산을 바라보며 지어진 별장들은 자연이 주는 선물을 그대로 받아안은 듯하다.

시원하게 잘 닦인 산내리 길을 나와 모가면 소재지 외곽에 자리한 모가중학교를 찾았다. 모가중학교는 1949년 송곡 고등공민학교로 설립돼 65년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다.

학생수가 100명에 불과한 조그만 시골학교지만, 유승우 국회의원을 비롯해 이천지역에서 손꼽히는 인물들을 배출하고 있는 저력있는 학교이기도 하다. 2012년에는 이 학교 야구부가 창단 7개월 만에 전국대회에서 우승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규모는 작은 학교지만, 마국산에서 이어진 산줄기를 뒤로 두고 청룡과 백호가 좌우로 운동장 앞까지 에워싼 좋은 곳에 세워졌어요. 멀리 보이는 산들도 토체와 일자문성을 이루면서 학교를 감싸고 있으니, 이곳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푸근한 자연의 품에서 에너지를 받으며 크고 있는 것입니다."

나지막한 산들이 에워싼 학교는 가을 볕 아래 조용하고 평화롭게 아이들을 품고 있다. 아쉬운 것은 본래 잘 이어져 있던 좌청룡이 식생활교육관을 지으면서 잘려나간 것이다. 청룡이 잘려나갔으니, 학교의 명예를 높일 인물을 배출하기가 어려워진 셈이다.

모가중학교를 나와 이천 시가지쪽으로 향하다가 다시한번 마국산을 돌아본다. 북쪽에서 바라본 마국산은 삿갓 모양의 전형적인 영상사를 이루고 있다.

"산의 정상이 물결치듯 출렁이고 험한 돌들이 많은 산을 주산으로 하면 도시가 발전하지 못하고 인물을 내지 못하는 법이지요. 이천에는 여러 산들이 있지만, 그 중 풍수적으로 좋은 산의 주변에서 좋은 인물이 나오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이천 모가면 출신의 조광 선생은 오랜만에 찾은 고향과 모교의 모습에 감회가 새로운 듯,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고는 이날의 풍수 여행을 마무리했다.

글/박상일기자
사진/김종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