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뤼네스반트, 동·서독 아픔 알려주는 역사이자 생태계의 보고
NGO 노력덕에 2002년부터 유럽 '철의 장막'도 보존 필요성 인정
강원도 DMZ 보고 '독일이구나'라고 생각… 韓·獨 역사적 동병상련 관계
왜 통일해야 하고 비무장지대 어떻게 활용할지 시민 스스로 고민해야


"DMZ가 보여주는 분단의 역사는 현실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미래다."

독일은 동·서독 분단시대 양 국가를 갈라놓았던 그뤼네스반트를 보존해 나가고 있다. 단순히 보존을 넘어서 그 공간에 대한 생태환경의 복원, 그리고 연구 활동까지 진행하고 있다.

물론 이런 모든 활동은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고 있다. 그뤼네스반트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역사적인, 생태·환경적인 가치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 낸 시민사회단체가 독일 최대의 NGO인 분트(BUND)다.

독일 정부에서 그뤼네스반트에 대한 연구와 보존에 소요되는 예산을 편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낸 단체도 분트다. 통일 이전부터 시작된 그뤼네스반트의 보존운동은 1989년 통일 이후에 본격화 됐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냉전 시대 유럽 전체를 갈라놓았던 철의 장막 복원 운동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분트는 작게는 독일의 그뤼네스반트, 넓게는 유럽 전체의 철의 장막 복원 사업의 중심에 서 있다.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 독일 대표로 한국을 방문한 분트의 의장 바이거(Hubert Weiger)씨를 만났다.

바이거 의장은 한국에 방문한 소감에 대해 "한국과 독일은 경제적 관계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동병상련'의 관계"라고 말했다.

이어 바이거 의장은 "얼마전 강원도 지역의 DMZ를 방문했을 때에는 '독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DMZ가 보여주는 분단의 역사는 현실이지만 동시에 통일을 준비하면서 DMZ는 한국인들의 미래가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를 DMZ에 대한 인터뷰 초반부터 거론하는 건 독일의 분단지역인 그뤼네스반트가 분트에서 보존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바이거 의장은 분트가 탄생되기 전인 1970년대 초반부터 그뤼네스반트 지역에 멸종위기 조류와 생물들이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독일 사회에 보존의 필요성을 홍보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이 알려지며 분트의 창립에도 깊이 관여하게 됐다.

그는 "분트가 하루 아침에 탄생된 단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독일 사회에서 분트와 같은 환경단체의 탄생이 필요하다는 것이 오랜 시간 제기됐었고 1913년 탄생한 바이에른 자연보호단체가 중심이 돼 1970년부터 논의가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1975년 첫 출범 당시에는 바이에른 자연보호단체장을 맡고 있던 후버트 바인찌얼(Hubert Weinzierl) 박사와 당시 바이에른 주지사를 맡고 있던 헬무트 슈타이니거(Helmut Steiniger)씨가 중심이 됐고 저도 함께 했다. 당시에는 제가 가장 젊은 창립 멤버였다"고 덧붙였다.

바이거 의장은 "그뤼네스반트는 역사적으로는 분단의 아픔을 후손들에게 반복되지 않도록 알려주는 중요한 자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의 발길이 끊어져 있었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가 남아 있는 천혜의 보고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거 의장은 분트의 그뤼네스반트 보존 활동의 시작은 독일의 통일과 함께 봐야 한다고 소개했다.

유럽 사회주의 붕괴의 시작인 '페레스트로이카'를 소련이 선언하면서 동유럽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2차 대전 후 냉전체제에서 분단된 독일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을 감지했다.

특히 1989년 라이프치히에서 민주화운동이 절정에 달하면서 거리에 많은 시민들이, 또 이들을 저지하는 군인들이 충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평화시위는 40년 이상의 분단 상징인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역할로 이어졌다.

약 2주후 동독과 서독 자연보호 관계자들이 모여 환경주제로 회의를 했다. 사실 그전에 서독과 프랑스는 DMZ에서 희귀 동식물을 찾았고, 보호관찰 필요성과 중요성에 의견을 모았다.

이 회의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이 바로 바이거 의장이다.

독일은 1989년 12월 DMZ 1차 회의에서 DMZ는 보호받아야 하고 지켜야하고 미래세대를 위해 잘 보존해야한다는 합의점을 찾는다.

하지만 회의를 마친 후 진행된 모니터링과 보호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DMZ내 환경이 87%가 보존되고 있었지만 나머지는 파괴되고 황폐화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바이거 의장은 "꾸준한 NGO의 노력과 정부의 협조관리 아래 2002년 독일내 DMZ뿐만 아니라 냉전시대 '철의 장막(Iron Curtain)'이라 불리던 곳도 보존의 필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런 활동에는 독일 통일에도 깊이 관여한 고르바초프의 역할이 크다. 그는 지금 분트 후원자이기도 하고 지지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철의 장막은 핀란드부터 발칸반도까지 이어진 냉전시대 분단의 장벽이다. 약 24만5천㎞의 길이로 유럽의 환경보호단체들은 유럽벨트로 명명하고 보존작업을 벌이고 있다.

과거 '철의 장막'에는 철조망이 쳐지고 배치된 군인들이 이 곳을 감시하기 위해 여러가지 시설물을 설치했었다. 기록에 의하면 1천여명이 이 장막을 넘으려다 즉결처분으로 죽었다.

바이거 의장은 "이런 철의 장막이 지금은 평화자연보호지역으로 과거의 역사를 이해하고, 지구상에 사라져가는 동식물을 볼 수 있고 또한 보존돼야 할 생태계보존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거 의장은 "여기에는 철의 장막이 있었던 국경지대 국가들과 분트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노력이 숨어있다. 핀란드와 러시아, 독일과 체코, 몬테네그로 등은 이곳을 평화지대 유럽벨트, 그린벨트로 만드는데 합의하고 지원하며, 각국 시민단체나 NGO단체들은 이곳을 보호관찰, 홍보활동을 하며 시민참여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이러한 노력은 정부와 NGO 협력에 좋은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는 단지 유럽이야기가 아니고 지구촌에서 알아야하고 배울 가치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내에서는 철의 장막-DMZ를 생태공원, 국립공원, 유럽그린벨트 지정과 더불어 국가기념사업, 나아가 유네스코 등록까지 목표를 두고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이거 의장은 "국가 차원에서 통일기금을 마련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통일 비용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이런 노력의 출발을 먼저 준비한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함께 동시에 진행되어야할 부분은 바로 시민들의 참여와 NGO단체의 활동이다. 학술회의나 시민들의 인식변화 그리고 '통일을 왜 해야 하고 현재 남북한 사이에 있는 이 DMZ지역을 어떻게 활용하고 보존해야 하는지'등 이런 고민이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바이거 의장은 "물론 동·서독과 달리 한국은 남·북한이 분단되고 민간교류가 힘든 상황인 것은 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고 행동한다면 그 과정의 노력은 언젠가 긍정적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한국은 통일준비과정에서 독일에 배울 수 있지만 분명 두 나라 사이에는 정치·경제·지리적 차이점이 있다. 그래서 독일 통일을 참고하면서 한국 스스로 통일과정 경험을 만들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글/김종화기자
사진/김종택기자
통역=박혜진 통역사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