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없어 묻힐뻔한 뺑소니·사망사고
끈질기게 추적 범인잡고 진실 밝혀내
"판례 공부·역지사지 마음자세 큰도움"


"모든 사고 앞에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경찰인 제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난 9월 17일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의 한 아파트 앞 횡단보도에서 78세 할아버지가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목격자들은 조사를 나온 이현(55·부평서 교통조사계 1팀) 팀장에게 "할아버지가 횡단보도를 벗어난 지점에서 대각선으로 무단횡단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진술했다.

이 팀장은 그러나 의아했다. 차의 진행 속도와 할아버지가 쓰러져 있는 위치를 감안했을 때 할아버지가 횡단보도로 건넜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주변 CCTV와 주변 차량 블랙박스 6개를 샅샅이 뒤졌다. 마침내 한 차량 블랙박스에서 할아버지가 정상적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장면을 포착했다.

고인은 말이 없었지만 이 팀장은 한 달 만에 고인의 억울한 죽음을 풀었다. 유족들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거듭 전했다.

이 팀장은 2년 전 계양경찰서 뺑소니전담반에 있을 때도 CCTV와 블랙박스 영상 등 증거가 아무 것도 없어 묻힐 뻔했던 뺑소니 사고를 해결하기도 했다. 차 파편 조각을 모아 물류센터에 들고 가 부품의 매매 흐름을 파악, 해당 부품을 구입한 주인을 찾아 6개월 만에 범인을 잡은 것이다.

이 팀장의 이러한 일처리에 힘입어 이 팀장이 속해 있는 부평서 교통조사계 1팀은 올 상반기 경찰청 주관 전국 교통조사팀 평가에서 전국 2등을 차지해 '으뜸팀'에 선정됐다.

이 팀장 부서가 '으뜸팀'에 선정된 것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2년 연속 수상의 비결(?)로 '끊임없는 공부'를 꼽았다.

그는 교통사고조사팀에서 일한 경력이 10년이 넘었지만 꾸준히 교통사고 판례가 나온 것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차대차 사고가 나서 조사받는 사람들이 모두 싸우고 있는 현장에서도 메모해 뒀던 판례를 보여주면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이 팀장은 무엇보다도 '역지사지'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몸이 고달프더라도 나와 내 가족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면 먼저 나서서 일을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일하는 것이 경찰 아니냐"라고 너스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는 마지막 순간에도 독자들에게 '안전운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운전중 휴대전화 사용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증가하는 등 전방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전방 주시 운전을 항상 기억하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윤설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