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장석남(50)은 인천 덕적도에서 태어났다.

덕적도 서포리 해변의 파도 소리, 찬란한 노을, 바닷새의 울음이 '섬 소년'의 감성을 자극했고, 그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장석남은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때 뭍으로 나와 송현초교를 다녔다. 인천남중과 제물포고를 거쳐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그는 고교 시절에 신포동, 홍예문, 자유공원, 제일교회 옆 돌계단 등지를 걸으며 시인을 꿈꿨다.

인천은 내 청춘의 유적지라고 해도 된다.(중략)이십여 년 전 청년기의 유적들, 그게 어디 내 추억만의 공간일까만 그 골목에서의 비틀거림이 그립고 푸근한 것은 내 뼈다귀에 그 거리가 새겨진 때문일 것이다.(산문집 '물 긷는 소리' 중 '한 장, 뱃고동의 지리부도')

장석남은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맨발로 걷기'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그리고 김수영문학상(1992), 현대문학상(1999), 미당문학상(2010), 김달진문학상(2012) 등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다.

장석남의 작품에는 '인천'이 있다. '군불을 지피며' '기압골의 집' '내가 듣는 내 숨소리' '한진여' '솔밭길' 등은 덕적도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며 쓴 시다. 인천시내가 배경이 된 작품으로는 '소래라는 곳' '버스 정류장 옆 송월전파사' '송학동' '돌의 얼굴' '오동나무가 있던 집의 기록' 등이 있다.

장석남은 "내 작품에는 실명으로든 그렇지 않든, 심상의 고향은 인천과 덕적도에 닿아 있다"며 "소재가 인천이 아니더라도 늘 인천의 향기와 냄새, 리듬이 묻어 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 바다, 썰물과 밀물, 돛배, 뱃고동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장석남은 2003년부터 한양여자대학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다.

/목동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