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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현지시간) 성탄 전야 미사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 /AP=연합뉴스 |
전쟁과 테러, 질병 등으로 얼룩진 한해를 보내며 지구촌 곳곳에선 성탄을 맞아 평화와 안전을 기원하는 행사가 다채롭게 열렸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베들레헴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25일(현지시간) 오전부터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수천 명의 인파 속에 미사가 열리는 등 지구촌 곳곳이 성탄절을 맞아 축제 분위기에 들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탄절 전야인 24일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 아르빌 교외의 안카와 난민촌에 전화를 걸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공격에 쫓겨나 고단한 생활을 하고 있는 기독교 난민들을 위로했다.
그는 난민들에게 "오늘 밤, (갈 곳 잃은) 여러분은 마치 예수 같다"며 "나는 여러분과 가까이 있으며 당신들을 축복하겠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성탄 전야 미사에서 "가족과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 겪는 문제에 더 깊이 공감해야 한다"며 "세상에는 친절과 따뜻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는 기독교인들이 폭탄 공격에 대비한 방폭벽으로둘러싸인 한 교회에서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성탄 전야 예배를 올렸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참석자들은 올여름 IS가 점령한 제2의 도시 모술, 북부 쿠르드족 거주지역 등에서 밀려나 난민 신세가 된 수천 명의 이라크 기독교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날 영국과 독일 군인들이 '크리스마스 휴전 축구'를 수도카불 인근의 한 모래밭에서 재현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당시 양국 군인들은 성탄절 전야와 성탄절 이틀 동안 잠정 휴전이 합의되자 상대를 겨누던 총부리를 거두고 전장에서 담소를 나누며 축구를 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아기 예수의 탄생지로 알려진 요르단강 서안 베들레헴에는 올해도 전 세계에서 수천명의 여행객과 순례자가 찾아와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서안 지역의 이번 성탄절은 지난 7∼8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간 50일간 전쟁이 있은 후라 더욱 특별했다.
파우드 트왈 예루살렘 총대주교는 성탄절 전야 미사에서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 기독교도들은 서로를 존중하며 평등하게 함께 살자"고 촉구한 뒤 "2015년은 어려웠던 올해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인파로 북적인 예수 탄생 교회 인근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지고 아랍어로 "우리가 성탄절에 원하는 것은 정의뿐"이라고 쓰인 큰 포스터가 붙었다.
이날 오전 베들레헴 구유 광장(Manger Square)에는 여행객들이 빼곡히 모여들어축제 분위기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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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현지시간) 성탄 전야 미사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 /AP=연합뉴스 |
광장에는 거대한 산타 모형이 세워졌으며 지척의 예수탄생교회(Church of the Nativity)에는 촛불을 켠 동굴이 마련돼 예수가 태어났다고 기록된 지점을 알렸다.
이 광장 한쪽에는 이스라엘 군인이 쏜 최루탄 가스통 수십개로 장식한 '성탄 트리'도 들어서 눈길을 끌었다.
팔레스타인 관광장관인 룰라 마야는 "올해 성탄절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의"라며 "우리 국민의 정의,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정의, (이스라엘의) 점령 없는 독립국가에서 다른 나라 국민처럼 살 권리를 원한다"고 말했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이 격전을 벌였던 시리아 중부 도시 홈스에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수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홈스는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반군에 장악됐다가 5월 반군의 철수로 다시 정부군에 넘어왔다.
7천500여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도 예년과 다른성탄절 전야 풍경을 만들었다.
에볼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서아프리카 3개국 중 하나인 시에라리온에서는 당국이 에볼라 확산 방지를 위해 향후 5일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금지하고 시장, 상점 등에도 운영 시간을 줄이라고 요청했다.
다만 어니스트 바이 코로마 대통령은 "성탄절에 교회에 가는 것은 허용된다"면서도 "예배를 마치고 즉시 집으로 돌아가 달라"고 요청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도 성탄절 오후에 방송될 연례 성탄 연설에서 에볼라에 맞서 싸운 의료인과 자원봉사자들의 희생정신을 치하할 예정이라고 AFP통신이 전했다.
그런가 하면 하와이에서 휴가 중 조우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함께 골프를 치며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AP통신은 오바마 대통령의 '휴가 중 골프'는 보통 취재가 엄격히 제한되지만 이날은 예외였다면서 두 정상이 함께 라운딩을 즐기면서 말레이시아의 내년도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의장국 지위 등 현안에 대한 의견도 나눴다고 덧붙였다.
한편,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79일간 시위가 벌어졌던 홍콩에서는 이날 도심 곳곳에서 성탄절 전야를 맞아 시위가 벌어졌다.
이번 시위는 15일 마지막 도심 점거 시위 캠프가 철수된 이후 처음으로 시위대 250여명이 "우리는 진짜 보통선거권을 원한다"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홍콩섬 애드미럴티(金鐘) 정부청사로 행진했다.
또 도심 점거 시위대의 주요 점거지였던 까우룽(九龍)반도 몽콕(旺角)과 홍콩섬코즈웨이베이(銅라<金+羅>灣)에서도 각각 500여 명과 200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홍콩 경찰은 이날 시위대 12명을 체포했다.
기독교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일부 지역 신자들이 '십자가 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기독교에 대한 단속이 부쩍 강화되면서 당국이 교회를 봉쇄하거나 십자가를 철거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시에서는 400여개의 교회에서 십자가가 당국에 의해 철거됐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의 한 대학은 '키치적인' 서양 명절이라며 크리스마스 행사를 금지하고 대신 중국의 사상을 홍보하는 영화를 의무적으로 관람케 하기도 했다. /카이로·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