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장장식 학예연구관은 철종 즉위에 대한 기록이 담긴 ‘덕완군 봉영기’(德完君 奉迎記)를 4일 경인일보에 처음 공개했다.
현재 철종 봉영(奉迎·왕을 모시는 것)과 관련해 남아 있는 사료는 조선왕조실록 등 5건인데, 정원용이 쓴 ‘경산일록’(經山日錄)을 제외하면 간략하게 기록된 수준이다.
이번 문서발견을 계기로 강화도 유배에 처한 철종이 왕으로 등극하는 급박했던 순간을 더욱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게 돼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덕완군 봉영기’는 너비 22.5㎝, 길이 230㎝의 두루마리형 한문 필사본으로, 1849년(기유년) 6월 6일 헌종이 세상을 뜬 직후부터 6월 9일 철종의 즉위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당시 강화도에 살고 있던 철종을 창덕궁으로 모셔 오는 과정과 헌종의 장례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다.
장장식 연구관은 지난해 11월 이 문서를 소장한 한 개인의 의뢰를 받아 최근까지 번역 작업을 진행했다. 장 연구관이 번역한 ‘덕완군 봉영기’에 따르면, 철종이 강화도에서 궁으로 행차하는 길에 많은 백성이 몰려들어 구경하며 “성군이 나셨다”고 칭송하는 장면이 있다.
또 철종이 강화도 갑곶나루에서 바다를 건널 때 오색 빛 무지개가 마치 다리처럼 뻗는 등 ‘상서로운 조짐’이 있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당시 새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기대감이 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철종이 한성으로 향하는 수레 안에서 좌우를 조금도 둘러보지 않은 채 조그만 부채를 흔들었다거나, 호위 군사들이 구경 나온 백성들을 물리치자 “그러지 말라”고 명하는 등 철종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있다.
장 연구관은 ‘덕완군 봉영기’에 관인이 많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문서가 왕실 비서실 기록인 ‘승정원일기’를 쓰기 위한 초고 성격을 띠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 연구관은 “기존 자료와 비교 연구해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며 “이 문서를 토대로 내년께 관련 논문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경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