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일 하며 3남매 ‘뒷바라지’ 이제 어엿한 업체대표
“소외이웃 목소리 전할것” 포부… 꾸준한 습작 등단도


“지친 발걸음으로 달려왔던 얼룩진 지난 삶, 회상할 겨를도 없습니다.”

10년 동안 대리운전직에 종사하며 엄마이자 가장으로 숨 가쁘게 살아온 윤한옥(50)씨는 펜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인생 후반부 설계의 담금질이 한창이다.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윤 씨의 어린 시절은 남들이 흔히 말하는 화기애애한 다복 가정이 아닌, 가난의 끈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중학생 때 그녀는 여학생들이 꺼리는 신문 배달일을 자청하며 자신에게 향한 생계부담을 스스로 덜어내야 했다. 고교에 진학해서도 그늘은 마침표가 없었다. 집안 형편은 학업 중도 포기를 불러왔고, 어쩔 수 없이 산업체 노동자의 길을 선택해야 했다.

그는 집을 떠날 당시 ‘반드시 고교 졸업장을 받아오겠다’는 엄마와의 약속이 항상 뇌리를 스쳤고, 이를 지키기 위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방송통신고 졸업장을 획득했다.

그의 젊은 시절 행복했다고 느낀 시간은 20대 초 신혼때 였을 것이라고 회상한 그녀는 행복을 잊고 살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억척스러운 삶을 살았다. 엄마로서 3남매를 뒷바라지 하느라 궂은 식당일도 마다치 않은 윤씨는 급기야 허리디스크 질환까지 앓았다.

먹고 살길을 찾아야 했던 그녀는 친구의 권유로 소일거리 삼아 대리운전을 시작했고, 이후 어엿한 사업장 대표로 당당하게 우뚝 섰다. 남다른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소중한 자산이었다.

직업 특성상 낮과 밤이 바뀌어 살고 있으나 바쁜 일상 속 잠깐의 휴식은 오히려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동기를 부여했다. 남들이 잠든 새벽 시간 윤씨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백지에 자주 옮겨 담았다. 꾸준한 습작은 지난 2000년 동두천시 주부백일장 입선의 영예를 안겼고, 마침내 2006년 문학세계에 수필로 등단하는 성과를 거뒀다.

바빠야 입에 풀칠한다는 생각으로 거친 숨소리만 세상과 마주했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여성단체협의회 총무와 시 명예 기자로도 활약하며 세상과 조화를 이뤄가고 있다. “가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그녀는 “이제 사랑하는 자식들을 지켜주는 든든한 엄마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웃인 홀몸노인의 임종까지 지키는 등 사랑을 실천하는 인물을 취재하면서 깨달음을 얻었다”며 “골리앗에 맞선 다윗의 용기와 지혜를 본받아 자아발견의 노력과 열정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동두천/오연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