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온수등 서비스는 아쉬워
5달러 내면 꼬리칸서 ‘흡연 가능’
일상 곳곳 뇌물 통하는 곳 ‘단면’
지난달 30일 오전 7시35분(현지시각)께 러시아 이르쿠츠크역(驛).
경인일보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 17개 기관으로 구성된 ‘유라시아 철도 공동조사단’이 ‘6번 열차(Train No 6)’에 오르자 늘씬한 러시아 여승무원이 말을 건넸다. ‘남한(유즈노이 까레이)에서 왔다’고 하자 남한 승객은 오랜만이라며 웃었다.
모스크바역을 출발한 6번 열차는 이곳 이르쿠츠크역까지 5천153㎞를 달려왔다. 경부선(441.7㎞)을 12번 정도 타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인데, 종착역인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까지는 앞으로도 1천113㎞를 더 달려야 한다.
열차는 장거리 노선답게 2인1실·4인1실의 객실을 갖췄다. 1천520㎜ 광궤(廣軌·레일 간격이 1천435㎜를 초과하는 철도 선로)에 따라 객차 폭이 2.5m 정도여서 성인 남성이 눕기에 부족함이 없다.
1천435㎜의 표준궤(標準軌)를 사용하는 한반도 종단열차(TKR)를 이용할 승객 입장에선, 러시아 열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객차 공간이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열차 좌석과 머리받이를 위로 들어올리면 짐과 물품을 넣을 수 있는 수납공간이 나오고 등받이를 좌석 위로 내리면 침대가 된다.
열차 앞 뒤 칸에 각각 온수통이 1개씩 있는데 전기가 아닌 석탄을 때 물을 데운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때 발생하는 가스가 제대로 배출이 안돼 운행 중간중간 객차 안 공기가 탁해지곤 했다) 배관과 온수통이 낡아서인지 컵에 온수를 받으면 미세한 쇳조각 같은 부유물이 떠다녔다.
화장실은 배설물을 담아두지 않고 선로에 그대로 뿌리는 방식이어서 기차가 역에 정차할 동안에는 일절 이용할 수 없다. 대륙을 횡단한다는 ‘위용’에 비해 정작 서비스는 낮은 수준이다.
오전 7시 55분께 출발한 열차는 2시간30여분 동안 126㎞ 거리를 달려 산촌 간이역인 슬류댠카에 정차했지만, 5분을 머무는 동안 이곳이 목적지가 아닌 승객의 하차는 철저히 통제됐다.
금연인 열차 안에서 한 남성이 지나가는데 담배냄새가 났다. 꼬리칸 쪽 승무원에게 물어보니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미화 5달러를 내라고 했다. 호기심에 러시아 담배 1개비를 달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2달러를 요구했다.
1985년 사회개혁 운동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 일상의 소소한 곳에서 ‘뇌물’이 통하는 사회임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울란우데역까지 달리는 동안 차창 밖으로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 ‘바이칼 호’의 장관이 3시간 넘게 펼쳐졌다. 호수 주변의 절경을 열차로 한 바퀴 돌 수 있는 관광상품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는 게 이은호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미래철도사업실장의 설명이다.
4시간35분을 더 달린 열차가 마침내 울란우데역에 도착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선로와 몽골종단철도(TMGR) 선로가 합류하는 곳. 플랫폼에 서서 승객과 화물을 잔뜩 실은 한반도 종단열차가 이곳에서 ‘한 숨’ 돌린 후 러시아 모스크바, 독일 베를린,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질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뛰었다.
울란우데/김민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