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못했던 가족의 반대

유치원에 적응 못하는 둘째 탓 결심
집안살림 걱정하는 아내 설득 애먹어
1년동안 월급일부 따로모으며 대비

■후회없는 선택

단순 가사분담 넘어 자기 성찰 기회
가족과 시간늘자 와이프 “잘한 결정”
회사 동료도 눈칫밥 대신 조언 구해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삼둥이 아빠 송일국 만큼은 못해도 SBS ‘아빠를 부탁해’ 조재현 같이 자녀들과 서먹한 아빠가 될 순 없잖아요.”

1년간 남성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으로 돌아온 입사 10년 차, 결혼 9년 차 두 딸의 아빠인 한준영(42) 경기도박물관 학예팀 학예사를 만났다. 그는 1년간 육아휴직을 통해 얻은 ‘남성육아휴직’의 A부터 Z까지를 30대 초반 미혼 남성인 기자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며 그만의 노하우를 공개했다.

그가 처음 남성육아휴직을 생각했던 시기는 지난 2007년 그의 아내가 첫 딸을 가졌을 때. “첫 아이였고, 출산을 얼마 남기지 않고 힘들어 하는 아내를 보며 육아휴직을 쓰려고 결심했죠. 하지만 그때는 남성이 육아휴직을 간다는 자체가 용납이 안 되고, 주변에서도 만류했죠.”

7~8년 전만 해도 직장에서 남성육아휴직은 불가능했다. 제도는 있었지만 금지된 ‘할랄’이나 마찬가지였다. 1년 동안 사무실 책상을 비운 채 남자가 1년 간 직장을 떠나 안방을 차지한다는 것은 ‘남자는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배워왔던 사회통념상 발칙한 발상이자, 실천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는 남성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했을 때 직장상사가 한 말을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었다.

“팀장님이 조용히 저를 불렀어요. 그러더니 저한테 ‘야 너 그러면 안 돼. 주변에 눈이 얼마나 많은데…. 직장 계속 다닐 거잖아. 이제 2~3년 차인데 승진도 해야지’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한 학예사는 상사의 조언에 입을 다물고 육아휴직서를 서랍 속 깊이 넣어 둘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지난해 1월 첫째 효림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둘째 유림이는 유치원에 들어가게 됐다. 무엇보다 신경 쓰인 것은 달라진 주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온종일 우는 유림이었다. 직장에서도 유림이가 눈에 밟혔다.

그는 자녀들이 교육을 받는 시기에 아빠가 옆에 있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약 1년간 육아휴직을 결정한다. 첫번째 육아휴직 신청이 민망하게 무산됐던데 비하면 세상 많이 변했다 싶을 정도로 이번엔 큰 무리가 없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육아휴직을 준비하기 위해 1년 전부터 월급 일부를 모았다. 휴직에 들어가면 월급이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상황이 뻔했기에, 나름대로 치밀하게 준비한 셈이다.

그런데 이번엔 가족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직장내 시선도, 인사상 불이익도 아닌 바로 ‘가족의 동의’가 힘들 줄은 몰랐다. “아내에게 말했을 때 반대가 심했어요. 막상 휴직하면 경제적으로 문제가 생기니까요. 하지만 한 달간 설득 끝에 마지못해 허락했죠.”

한 학예사의 1년 육아휴직은 아내의 허락과 함께 시작됐다. 처음 한두 달간 몸도 마음도 편안할 수 없었다. 자기 일을 직장 동료들에게 남기고 온 미안함과 가정에 돌아왔지만 어떤 일부터 도와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석 달째 접어들면서 어떤 곳에 아빠의 손길이 필요한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터로 향하는 아내의 출근길을 배웅했고, 두 딸의 등교준비를 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자 바쁜 아내를 대신해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하교 후 두 딸의 숙제검사를 하는 등 자연스럽게 가사가 분담됐다.

육아휴직은 단순한 가사분담을 넘어 9년 간 일에 치이며 살아왔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박사과정 중이던 그는 휴직기간 동안 밀려 있던 연구를 하며 자기계발의 시간을 가졌다.

한 학예사는 “생각해 보니 1년간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기도 했지만 좋은 방향으로 많은 것이 변화됐다”고 말했다.

가장 큰 변화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두 딸이 잠든 오후 9시에 퇴근했던 그는 육아휴직 1년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었다. 제주도 가족여행에 이어 멀리 미국 텍사스 오스틴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미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휴직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아내가 “육아휴직 잘한 거 같아”라고 말했을 때 그는 남성육아휴직이 후회 없는 선택이었음을 확인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직장은 업무 부적응과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예상했던 걱정과 달리 적응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동료들의 배려로 업무파악을 2주 만에 끝냈다. 사내에서 ‘남성육아휴직을 쓴 이단아’라는 낙인이 찍혔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오히려 남성육아휴직에 대해 조언을 얻으려는 동료들이 많아지면서 ‘남성육아휴직 전도사’가 됐다.

한 학예사는 남성육아휴직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개인의 결정도 중요하지만, 회사의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며 “남성육아휴직을 이해할 수 있는 회사 분위기, 휴직자의 빈자리가 문제 되지 않는 인프라를 갖춘 회사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그만한 기반을 갖추고 있는 회사가 많지 않고, 아직도 불편한 시각으로 남성육아휴직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어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 학예사는 “회사 상황도 영향을 주지만 무엇보다 젊은 기혼남성 직장인들이 세상의 인식을 두려워 말고 적극적으로 휴직 권리를 사용해야 남성육아휴직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은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