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폭탄 피해 추모 한국인 위령비
히로시마평화공원으로 이전 ‘보람’
우리 교민 위해 일하는 공무원일뿐
여성이라 대우 받으려는 생각없어
“일본 센다이는 한국과 아주 특별한 인연이 많은 곳입니다. 총영사로서 한국과 일본의 정서를 잇는 가교가 되겠습니다.”
지난 3일 주센다이 대한민국총영사에 임명된 양계화(57) 총영사는 센다이에 대한 애틋한 심경을 보였다.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에 위치한 센다이는 역사적으로 우리와 밀접한 관련이 많다고 말했다.
“안중근의사가 옥고를 치를 당시, 안 의사를 담당했던 일본인 간수가 그의 인품에 반해 매우 극진히 모셨는데, 그 간수의 고향이 센다이 지역이고, 간수는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안 의사가 유품으로 남겨준 족자를 소중하게 간직했습니다. 간수가 죽은 후에는 그의 위패가 봉인된 대림사에서 안 의사와 간수의 위령제를 함께 지내고 있어요.”
그는 사실 센다이 뿐 아니라 일본 근무 경험이 많은 ‘일본통’이다.
첫 발령지였던 도쿄를 시작으로 히로시마와 센다이 등지에서 근무하며 일본인들과의 정서적 유대를 쌓아왔다.
1980년, 양 총영사는 외교부 7급 공무원(당시 주사보)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당시 여직원이 10명도 채 되지 않는 척박한 환경이었다.
“일본 도쿄에 부영사로 발령받아 갔는데, 한 교포 분이 저를 신기하게 보시고는 ‘여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공무원으로 일본에 와 있다니, 우리나라가 많이 발전했군요’라며 격려하시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만큼 당시 공무원 사회가 남성 중심이었지만, 막상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니 열심히 일하려는 여성공무원에게 기회를 줬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히로시마 영사관에서 근무할 때는 직접 발로 뛰어 뜻 깊은 일을 해내기도 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은 원자폭탄의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일본인 위령비는 공원 안에 있지만, 한국인 피해자들은 공원 밖에 있었어요. 수십년 세월 영사관에서 한국인 위령비를 공원 안으로 옮기려 노력했지만 쉽진 않았죠. 당시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뛰어다니며 설득했고 다행히 제가 있는 동안 한국인위령비를 공원 안으로 모실 수 있게 됐습니다. 굉장히 보람되고 뭉클했습니다.”
돌발적인 변수가 많은 외교관의 일이 여성으로서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양 총영사는 담담하지만, 당당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우리 교민들을 위해 일하는 한국 공무원이라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특별히 여성이라서 힘들다고 티를 내거나 대우를 받으려고 하지 않아요. 외교현장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 힘들지만, 국민을 위한 공무원이라는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