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보면 ‘파울볼’은 언뜻 전형적인 휴먼 다큐멘터리 같다. 프로야구팀에 가지 못했거나 팀에서 방출된 선수들이 ‘야구의 신’이라 불리고 있는 김성근 감독을 중심으로 모여 피땀 어린 노력으로 재기를 꿈꾼다는 이야기이니 그럴 법도 하다. 애초에 영화의 기획의도 역시 별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패자부활전이라는 것이 없는 승자독식의 한국사회에서 경쟁의 도태자들에게 돌아갈 기회는 없다. 선뜻 ‘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기회를 주는 팀과 지켜보는 스승이 생겼다며 만면에 웃음 가득한 한 선수의 소회가 울림이 큰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고양 원더스라는 독립구단은 어쩌면 이 사회의 열망이 응집된 상징적 희망 같은 존재였는지 모른다.
이야기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프로 진출 실패와 방출이라는 장애를 딛고 뛰어난 지도자와 함께 고된 훈련 끝에 재기한다. 스포츠 영화로서 갖춰야 할 것들은 다 있다. 진한 휴머니티가 주는 감동은 고된 삶을 이어가는 관객들에게 ‘희망’이란 것을 선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영화에 담긴 현실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감독과 선수들의 꿈이 담긴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가 느닷없이 해체되기 때문이다. ‘왜?’라는 질문은 명확한 대답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구단 해체라는 사실만이 엄정한 현실이다.
그런데 구단 해체 발표 후에도 선수들은 연습한다. 더는 자신들이 꿈꾸던 낭만적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묵묵히 공을 던지고, 쳐내고, 받는다.
희망의 끝에서 그들이 택한 것은 희망이나 절망 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근육의 팽팽한 긴장과 셀 수 없이 반복되는 같은 몸놀림, 그리고 비오듯 흘러내리는 땀이라는 지극히 구체적인 현실이었다.
어쩌면 희망이라는 것은 현실을 감당하기에는 허약한 것인지 모른다. 그렇기에 영화는 희망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무작정 버텨내기만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조롱이며 냉혹한 현실에 대해 추상이 아니라 더 구체적인 현실로 싸워나가라고 충고하는 조언이자 응원가이다.
/이대연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