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곳에 터를 잡고도
이를 버리고 떠나니、
무엇이 급하더냐
아쉽고도 아쉽구나…


관악산 주산으로 ‘富를 불러들이는 곳’
주변과 조화 아담한 시청건물 ‘인상적’
배산임수 국립현대미술관·서울랜드 등
문화·관광도시로 가꿔나가면 전화위복

과천시는 작은 도시다. 면적 35.86㎢에 인구는 7만이 조금 넘는다. 면적으로 따져서는 경기도 면적의 0.35%에 지나지 않고, 인구는 아직 시(市)가 되지 못한 양평군(10만5천명)보다도 적다. 하지만 과천은 많지 않은 인구로도 30년 전에 벌써 시가 되었고, 경기도내 31개 시군 중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로 꼽혀왔다.

관악산과 청계산 아래 산 좋고 물 좋은 땅에, 교통 편하고, 경제적으로도 여유있는 도시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취재팀이 찾아간 과천시 정부종합청사 일대는 화창한 봄 날씨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활기 넘치던 모습이 사라지고 왠지 ‘한풀 꺾인’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과천의 심장부나 다름없던 정부종합청사의 각 부처들이 옮겨간 영향이 적지 않은 듯 했다.

새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기운찬 관악산 줄기를 병풍처럼 두르고 여전히 당당하게 서 있는 정부종합청사의 커다란 건물들이 무색했다. 지난 1985년까지 시흥시에 딸린 일개 면(面)이었던 과천을 1986년 1월에 단번에 시(市)로 올려놓은 것이 정부종합청사 이전의 효과였으니, ‘알맹이’가 빠져나간 여파가 작을 리 없었다.

“과천 정부종합청사는 풍수적으로 좋은 곳에 터를 잡았어요. 관악산을 주산으로 두어 좋은 기운을 받으면서 앞이 넓게 잘 트인 곳이에요. 이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지요. 특히, 정부청사 쪽에서 보면 관악산 봉우리들이 영상사를 이루고 있는 것이 여럿 보이고, 좌우로 청룡과 백호가 자리 잡고 있어 기본이 잘 갖춰졌다고 볼 수 있어요. 청룡 보다는 백호가 좀 더 잘 뻗었으니, 명예도 좋지만 부(富)를 더 잘 불러들이는 곳이라고 하겠네요.”

조광 선생 설명대로 정부종합청사 뒤로 힘차게 이어진 관악산 줄기 곳곳이 보기좋게 삼각형으로 솟아 영상사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커다란 바위들이 많고 꼭대기가 거칠게 솟아있어 대표적인 화성산(火星山)으로 꼽히는 관악산을 주산으로 두었다는게 마음에 걸린다.

“그렇죠. 관악산은 대표적인 화성산이에요. 그래서 서울을 도읍으로 정할 때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해서 광화문 앞에 불을 먹는 해태상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하지만 산이라는 것은 보는 방향에 따라서 형태가 달라지게 마련이에요. 관악산은 서울 쪽에서 바라보면 불의 기운이 강한 화성산이지만, 과천쪽에서 바라보면 다른 모습이에요. 바위들이 많아도, 나쁜 기운을 가진 거친 돌들이 아니라 좋은 기운을 가진 귀석(貴石)들이 많아서 그 또한 나쁘지 않고요. 그러니 여러 면에서 볼 때 정부종합청사와 과천시청은 당시 참 좋은 터를 찾아 쓴 것이죠.”

과천청사를 둘러보다가 귀에 익은 확성기 소리를 만났다. 청사 앞길 한쪽에 스피커가 달린 차를 대놓고 ‘노동가요’를 틀어놓았다. 차에 붙어있는 글을 보니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인 듯 싶다. 하지만 듣는 이들도 없고, 시위하는 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이 또한 거의 매일같이 집회나 시위로 와글거렸던 예전의 모습과 다른 모습이다. 시끄러운게 없어져서 좋다고 하기에는 허전함이 너무 크다. 조광 선생도 마음이 불편한 듯 한마디를 던진다.

“이렇게 좋은 터를 잡아 커다란 종합청사를 만들어 놓고도, 불과 30년만에 이곳을 버리듯이 하고 다른 곳으로 청사를 옮겨간다는게 이해가 안돼요. 게다가 세종시는 허허벌판 한가운데에 억지로 만든 도시니, 기운이 모이지 않고 바람을 많이 탈 수밖에 없어요. 골고루 잘 사는 균형발전도 좋지만, 풍수적으로 볼 때 좋은 것을 버리고 좋지 않은 것을 택한 셈이어서 안타깝기만 하네요. 이로인해 나라가 어려워질까봐 걱정이에요.”

정부종합청사 바로 옆에 자리한 과천시청은 요즘 시청 건물치고는 아담하기만 하다. 다들 옛날 청사를 허물고 높고 크게 새 청사를 짓는 것이 유행인데도, 과천시는 3층짜리 아담한 ‘빨간벽돌’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다.

하지만 여러 도시들이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지지 않는 독불장군식 청사를 지어 오히려 나쁜 영향을 받고 있는 것과 달리, 과천시청은 주변의 산과 나무들과 같이 잘 어우러진 모습이 보기 좋다.

조광 선생도 “건물이 좀 작아서 불편할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튀지 않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건물이 좋은 건물이에요. 시청 건물을 크게 지어 도시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고 요란을 떤 자치단체들이, 결국 겉만 번지르르 하고 속으로는 어려움에 빠져 끙끙대고 있는 것을 보면 무엇이 옳은지를 쉽게 알 수 있어요”라며 칭찬을 더해준다.

시청을 나와 이번에는 서울랜드 쪽으로 향했다. 과천저수지를 끼고 서울랜드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대공원이 차례로 자리를 잡은 이곳은 수도권 주민들의 대표적인 휴식처로 꼽히는 곳이다.

여기에 국립과천과학관도 주차장 건너편에 새롭게 조성됐고, 인근에 자리한 렛츠런파크(경마공원)까지 더해져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취재팀은 커다란 대공원주차장 옆을 지나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아갔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벚꽃이 손님들을 반갑게 맞는다. 미술관에는 아이들이며 젊은 연인들이며 가족들이 가득하다.

“미술관이 자리한 곳은 사실 골짜기 입구예요. 골짜기를 막거나 골짜기 안쪽으로 들어앉았다면 풍수적으로 안좋을 수밖에 없는 곳이지요. 다행히도 미술관은 옆으로 돌려 산자락 쪽으로 붙여서 지었어요. 덕분에 앞쪽으로 자연스럽게 호수가 만들어지면서 배산임수가 되었고, 건너편 산은 안산(案山)이 되었어요. 게다가 미술관 왼쪽으로 뻗어 올라간 산이 토체(土體)를 이뤘네요. 비록 백호가 없어 재물이 모이지는 못하지만, 토체가 있고 청룡이 좋으니 명성을 쌓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고, 안산도 부드럽고 예쁘니 풍파를 막아주겠어요. 원래 터는 좋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최대한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노력한게 보입니다.”

미술관에 이어 서울랜드와 렛츠런파크 등을 둘러본 조광 선생은 정부종합청사에서 느꼈던 아쉬움이 조금 풀리는 듯한 표정이다.

“오늘 둘러보니 과천은 휴양과 관광쪽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듯 해요. 원래 과천이 살기에는 좋은 땅이었으니, 이곳의 장점을 잘 살려서 문화와 관광이 어우러진 도시로 가꿔 나간다면 과천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광 선생은 마지막으로 “어쨌든 과천은 복 받은 도시”라며 “정부종합청사가 빠져나간 것을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과천이 아름답고 행복한 도시로 오랫동안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취재를 마무리했다.

/글·사진=박상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