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당하던 아이 ‘전연성’
중1때 매맞지 않으려 처음 접해
“죽고 싶다” 좌절 관심으로 극복
한결 밝아진 모습 각종대회 두각
“복싱사에 한획 긋는 선수되고파”
■또래 괴롭히던 아이 ‘윤기범’
공부는커녕 싸움질 엇나간 생활
선수에 된통당하고 오기로 시작
복싱통해 비뚤어진 마음 다잡아
“죽기 살기로 최선… 즐기고 싶어”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중·고등학생 신인 복서들이 총출동한 대회에서 ‘흙 속의 진주’ 같은 기대주들이 등장했다. 인천에서 같은 체육관을 다니는 친구 사이인 전연성(60㎏급)과 윤기범(69㎏급)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지난달 제47회 전국중·고신인 복싱 선수권대회 해당 체급에서 월등한 기량으로 3전 전승을 기록하며 당당히 챔피언에 오른 신예들이다.
두 복서에게 눈길이 가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한 명은 또래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왕따’였고, 다른 한 명은 반대로 학교의 문제아로 낙인찍혔던 ‘일진’이었다는 점이다.
학교폭력의 그늘에서 괴로워하고 방황하다가 우연히 접한 복싱을 통해 잊어버렸던 웃음을 되찾고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두 신예 복서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 ‘왕따’ 아이의 상처 어루만져 주다
전연성은 3전 3KO승으로 우승하며 ‘최우수선수상’의 영예까지 안았다.
전연성은 중학교 1학년 때 또래들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복싱을 가르치면 적어도 매는 안 맞고 다니지 않겠느냐는 절박한 심정으로 아들을 데리고 체육관을 찾았다고 한다.
전연성은 2~3개월 복싱을 배웠을 무렵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혔던 아이와 마주하게 됐다. 어린 마음에 복싱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었던 전연성은 용기를 내서 그 아이에게 맞서봤지만, 결과는 뻔했다.
그 이후로 전연성은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체육관에도 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엄마는 전연성의 노트에서 ‘죽고 싶다’는 메모를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걸음에 체육관으로 달려가 눈물을 쏟으며 “우리 아이를 도와달라”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전연성은 “반에서 항상 키가 가장 작았다”며 “심하게 괴롭힘을 당했을 땐 정말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아팠던 기억을 떠올렸다.
전연성은 큰아버지뻘 되는 ‘체육관 관장님’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게 된다. 나이 차가 꽤 나는 복서 ‘형님’들은 체육관에서 꼭 붙어서 같이 놀아주고 때로는 링 위로 데리고 올라가 일부러 맞아 주기도 하면서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다.
주위의 관심과 사랑은 아이를 변화시켰다. 말수가 적고 표정이 어둡던 전연성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듬해에는 양주에서 열린 복싱대회에 나가 우승을 차지하는 등 운동에도 소질을 보였다. 전연성은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와도 화해했을 정도로 몸도 마음도 모두 커졌다.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복서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제 인생을 걸어보고 싶어요. 아직 많이 부족해 욕심일지 모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슈퍼스타 복서가 되고 싶어요. 복싱사에 한 획을 긋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웃음)
# 운동으로 비뚤어진 마음을 다잡다
윤기범도 3전 3승(1KO)으로 챔피언에 오른 유망주다.
윤기범은 중학생 때 ‘학교에서 좀 논다’는 일진이자, 그 무리에서도 가장 주먹이 센 소위 ‘짱’이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그는 부모의 기대와 달리 자꾸 엇나가기 시작했다. 공부는커녕 학교에서 하루가 멀다 하게 싸움질을 하고 또래들을 괴롭혔다.
윤기범은 중학교 3학년 때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과 체육관을 들락거렸다. 두어 달 지났을 때였을까. 주먹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던 그는 당시 체육관을 다니던 한 또래 학생과의 스파링에서 제대로 힘 한번 못 써보고 된통 혼이 났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 체육관을 그만둔 윤기범은 오기가 생겨 석 달 만에 다시 체육관을 찾았다. 그는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훈련을 했고, 다음 달 열린 한 복싱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사고뭉치였던 윤기범도 학교폭력의 한 피해자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친구들한테서 심한 ‘왕따’를 당했다고 한다. 참다못한 그는 학교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량한 동네 형들과 일부러 어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복싱은 아이의 비뚤어진 마음을 다잡아 줬다.
윤기범은 “겉으론 힘이 세 보이는 척했지만 어렸을 때 왕따를 당했던 기억 등 왠지 모를 열등감이 있었다”며 “운동을 시작한 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왔을 때 정말 뿌듯했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다니던 대안학교를 휴학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또 부모님과 대화도 많이 나누고 틈틈이 책도 즐겨 본다고 한다.
“저도 놀라워요. 복싱이 많은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아요. 이왕 복싱을 시작한 거 죽기 살기로 해보자고 처음 결심을 했을 때처럼 앞으로도 한 우물을 파려고 해요. 복싱으로 성공하면 좋겠지만, 일단은 복싱이 제 길이다라는 생각으로 즐기면서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많이 응원해 주세요.”
/임승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