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생의 욕망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면서도 끝내는 미련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 곱게 단장을 하고 분칠을 한 망자의 모습 또한 이승의 욕망을 간직하고 있다. 80대 노장은 그러한 망자의 몸마저 벗어버리고 싶었던 것일까? 인트로와 달리 영화 ‘화장’은 시끌벅적한 의례도 꽃상여도 없는 죽음의 단면을 그려내고 있다.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화장’은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이면서 동시에 전작 ‘축제’의 후속작 같은 느낌을 준다. 1996년 작 ‘축제’에서 감독은 장례라는 인간의 마지막 통과제의를 꼼꼼히 잡아내며 화해와 축제의 장으로 그렸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한 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며, 죽음을 사회적인 것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에 대한 영화였다. 그에 비해 ‘화장’이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보다 냉철하고 직선적이다. 토장에서 화장으로 변하는 순간 죽음은 문화적인 것에서 실존적인 사건으로 변모한다.
‘화장’이라는 제목은 얼굴을 치장하는 화장(化粧)과 죽은 몸을 태우는 화장(火葬)을 중의적으로 담고 있다. 화장(化粧)은 덮고 꾸미는 것이다. 추한 것을 숨기거나 실제보다 더욱 아름답게 포장하는 행위이다. 은폐와 강조의 욕망인 것이다.
전립선 비대증으로 병원에서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비로소 배뇨하는 주인공 오상무의 부풀어 오른 오줌보는 배출되지 못한 채 누적된 우리 욕망이 지닌 팽팽한 긴장감과 다름없다.
아내의 장례식장에서 그는 눈에 띄지 않게 발목에 찬 작은 주머니에 조금씩 오줌을 흘려보내고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욕망을 처리하는 방법이자 은폐하는 방식이다.
‘화장’이 거장의 신작에 대한 기대에 비해 다소 실망스럽다는 비판도 있다. 원작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삶과 죽음, 몸과 욕망, 윤리와 죄의식에 대한 노감독의 겉치레 없이 순전한 시선은 우리 영화사에 주어진 또 하나의 선물임이 분명하다.
/이대연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