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래리 호건(오른쪽) 미국 메릴랜드 주지사가 경찰에 체포됐다가 척추 손상으로 사망한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25) 사건 항의 시위 도중 불탄 볼티모어 상점가를 30일(현지시간) 둘러보고 있다. /볼티모어 AP=연합뉴스
미국 메릴랜드 주 검찰이 볼티모어 흑인 청년 사망 사건 관련 경관 6명을 2급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메릴랜드 주 검찰청의 메릴린 모스비(35) 검사는 1일(현지시간) 최근 경찰에 체포된 뒤 숨진 프레디 그레이(25)의 사망 원인이 '경찰에 의한 살인'이라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같은 기소 방침을 밝혔다.

지난해부터 미국에서는 경찰에 의한 비무장 흑인 사망이 잇따르면서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이어졌지만 주요 사건의 가해 경관이 기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기소된 경관 6명 가운데 2급 살인 혐의를 받은 경관은 체포 당일인 지난 달 12일 그레이를 압송한 밴 차량을 운전한 시저 굿슨(45) 1명이다.

굿슨은 최고 징역 30년을 선고받을 수 있는 2급 살인 외에도 최고 징역 10년에해당하는 과실치사와 2급 폭행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윌리엄 G. 포터와 브라이언 라이스, 얼리샤 화이트 등 3명은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받았고 나머지 경관 2명은 2급 폭행, 불법 체포 등 혐의로 각각 기소됐다.

이들은 곧바로 볼티모어 시 구치소로 이송돼 수감됐다.

이날 오전 볼티모어 시청 앞에서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사결과를 발표한 모스비 검사는 "그레이가 지난 12일 체포됐을 당시 여러 차례 치료를 요청했지만, 경찰들이 하지 않았다"며 "그레이에 대한 체포는 불법적이었다"고 밝혔다.

▲ 경찰 구금 중 목숨을 잃은 흑인 용의자 프레디 그레이(25) 사건에 대한 항의시위 사태 속에 30일(현지시간) '진앙지'인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시청 앞에 주 방위군이 배치돼 경비에 나서고 있다. /볼티모어 AP=연합뉴스
그는 또 그레이가 바지 주머니에 '잭나이프'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으나 해당 나이프는 불법적 흉기가 아니며 이를 소지했다는 것이 체포사유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모스비 검사는 "포괄적·독립적으로 철저히 진행한 수사와 부검결과 등을 종합할 때 해당 경관들을 기소할 이유가 충분하다.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며 이번 수사가 성역없이 진행됐음을 강조했다.

불과 4개월 전 주 검사직을 맡은 모스비 검사는 가해 경관들을 대배심을 통해 불기소했던 이전 유사사건들과 달리 대배심을 거치지 않고 직접 기소했다.

이번 기소는 기소·불기소에 대한 예상이 엇갈리고, 대배심을 구성할 것이라는전망이 우세했던 법조계의 예상과 달리 단호하고 신속하게 이뤄졌다.

지난해 7월 뉴욕 길거리에서 흑인 남성 에릭 가너(당시 43세)를 목졸라 숨지게한 대니얼 판탈레오와 8월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당시 18세)을 총격 사살한 대런 윌슨 등 백인 경관들에 대해 대배심은 모두 불기소를 결정했으며 이에 따라 항의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번졌다.

볼티모어에서도 그레이의 장례식 이후 시위와 폭동이 5일 째 이어졌다.

그러나 검찰이 그레이에 대한 부검 결과 등을 토대로 경관들을 기소하는 등 속전속결로 대처하자 그레이의 유족과 시민들은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레이의 양부인 리처드 시플리는 "검찰의 발표에 만족한다"며 "다만 기소 결정은 그레이를 위해 정의를 바로잡는 과정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모스비 검사가 '경찰에 의한 살인'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하자 지켜보던 시민들은 환호했다. 일부는 "정의! 정의!" 등의 구호를 외쳤으며 몇몇 운전자들은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지지를 보냈다고 AP 통신은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AP는 또 폭동의 중심지였던 도시 북쪽과 펜실베이니아 대로 등의 분위기도 대체로 잠잠해졌다고 전했다. 다만 시청앞 사거리에는 여전히 무장한 진압병력 100여 명이 배치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니언 광장에서 경찰 구금 중 목숨을 잃은 흑인 용의자 프레디 그레이(25)의 사망에 분노한 시위자들이 근래 백인 경찰에 의해 숨진 흑인들 명단 등을 앞세운 채 항의하고 있다. 사태의 '진앙지' 볼티모어에서 이날 오후 수천명의 군중이 시내로 모여들어 대규모 항의시위를 재개한 가운데 연대 시위가 미 전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였다. 그레이의 사망원인에 대한 볼티모어 경찰의 조사결과가 30일 메릴랜드 주 검찰로 넘겨졌다. /뉴욕 AP=연합뉴스
지난 12일 체포된 그레이는 체포 현장에서 경찰서로 이동하는 사이 압송 차량 안에서 의식을 잃었고 척수 손상으로 수술을 받았으나 일주일 뒤 숨졌다.

특히 체포 과정에서 2명의 경관이 그레이의 등을 무릎으로 눌러 제압하고서 축 처진 그를 경찰차로 끌고 가는 장면을 찍은 일반인 동영상이 공개돼 경찰의 과잉행동 논란이 일었고 이것이 폭동을 유발했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된 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그레이에게 일어났던 일의 진실이 드러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정의가 작동하고 모든 증거가 제출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내 생각에 볼티모어 시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진실이며 이는 또한 미국인들이 기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경찰은 이번 수사결과에 대해 반발했다.

볼티모어 경찰 노조는 이날 모스비 검사의 수사결과 발표 전 그에게 보낸 서한에서 "비록 상황은 비극적이지만, 관련 경찰 누구도 그레이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며 특별검사를 임명할 것을 주장했다.

굿슨 등 가해 경관 측 변호인도 "검찰이 터무니없이 서둘러서 기소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워싱턴·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