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다. 소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밥을 먹는 소리, 커피를 내리는 소리, 집안을 서성이는 소리가 있다. 때로는 김치를 담그기도 하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기도 한다. 움직일 때마다 서걱이고 버석댄다. 의미로 이어지지 못한 소리들은 쉽게 바스러지고 맥없이 지워진다.
그렇기에 이 고요는 침묵이다. 침묵을 깨는 것은 소리가 아니라 손이다. 손이 바쁘게 움직이면 표정이 변한다.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들의 대화는 세상에 소리를 보태지 않는다. 금세 흩어지는 말보다 이들의 손짓은 마음에 더 가까운지 모른다.
‘반짝이는 박수소리’는 청각장애를 지닌 부부가 지나온 삶과 그들의 일상을 담담히 풀어낸다.
이길보라 감독의 실제 부모이기도 한 그들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시종 따뜻하지만, 연민이나 동정과는 거리가 있다. 그보다는 두 세계의 부딪침, 소란스러운 말의 세계와 고요의 세계가 공존하고 충돌하는 지점에서 출발하여 가족의 의미를 질문한다.
부모의 표정을 보며 수화로 옹알이했다는 감독은 두 세계 모두에 속해 있었지만, 그중 어디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떠돌고 부유하는 삶을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감독 자신의 자기 해명서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 세상의 모든 장애인은 착해야 하는 것처럼 나와 동생도 착하게, 그리고 빨리 자라야만 했다’는 진술처럼 감독의 자기 해명은 청각장애인 부모와 별개일 수 없다.
그것은 특수하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자기인식이다. 생명의 연속선에서 부모와 자식은 서로 떼어 생각하기 어려운 존재다. 청각장애인 부모를 향한 카메라의 시선은 그 연속성에 대한 확인이자 부모의 삶에 대해 조용한 갈채다. 침묵과 말이라는 두 세계를 넘어 가족을 있는 그대로 승인하고자 하는 힘겨운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손을 앞뒤로 흔들어 반짝임을 표시하는 손짓이 수화에서는 박수를 뜻한다고 한다. 그것은 어쩌면 반짝거리는 것들에 대한 찬사인지 모른다. ‘타짜’에서 전문도박꾼 고니는 ‘손은 눈보다 빠르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때로 손은 입술보다 진실하기도 하다. 서로에게 손을 반짝여주는 이 가족이 따뜻하다.
/이대연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