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현지시간) 낮 미국 버지니아주 밀포드 카운티의 캐럴라인 중학교에 조성된 '38선 기념정원'에 한국전 참전용사 대표들이 화환을 제공하고 있다. 한인단체나 참전용사들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미국 중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건립작업을 추진 중이어서 의미가 각별해보인다. /밀포드=연합뉴스
=연합뉴스" dataend="imgend">"같은 38선에 놓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과의 끈이 느껴져요","한국전쟁을 '잊힌 전쟁'(Forgotten War)이라고들 하지만 여기서 만큼은 아닙니다."

한국의 38도 선과 같은 위도에 놓인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한 중학교에 '38선 기념정원'이 조성되고 있어 화제다.

이는 특히 한인단체나 참전용사들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미국 중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설계에서 건축 작업까지 맡은 것이어서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22일(현지시간) 낮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남쪽으로 120㎞ 떨어진 버지니아 주 밀포드 카운티의 캐럴라인 중학교에서는 38선 기념정원 벽돌기증식이 열렸다. 이 학교 역사동아리 소속 학생과 한국전 참전용사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단이 정원 조성에 쓰일 벽돌과 한국 관련 서적을 기부하는 행사였다.

남북 분단을 상징하는 38선의 의미를 조명하는 기념 시설이 미국에 조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8선 기념정원을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는 2012년 봄 이 학교의 역사연구 동아리 학생들이 처음 내놓았다.

당시 역사연구 동아리를 돌보던 루스 주드 교사는 동료교사로부터 자신의 학교가 한국의 38선과 같은 위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평소 한국사에 관심이 있었던 주드 교사는 이를 계기로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38선의 의미를 평가하고 한국전쟁과 남북분단 등 한국 현대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 학생들이 38선의 의미를 조명하는 '역사적 상징물'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주드 교사는 "학생들이 38선이 현재 남북한을 가르는 비무장지대(DMZ)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때 6∼7명의 학생이 38선을 기념할 수 있는 상징물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기념정원을 조성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말했다.

▲ 22일(현지시간) 낮 미국 버지니아주 밀포드 카운티의 캐럴라인 중학교에 조성된 '38선 기념정원'. 한인단체나 참전용사들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미국 중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건립작업을 추진 중이어서 의미가 각별해보인다. /밀포드=연합뉴스
=연합뉴스" dataend="imgend">학생들은 주드 교사와 협의를 거친 뒤 곧바로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밀포드 카운티에 기념정원 건립을 신청하고 카운티 정부는 이를 수락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한인교회와 참전용사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학생들은 중학교 바로 옆 고등학교 잔디밭을 정원 부지로 정하고서 직접 설계하고 공사를 맡았다. 함께 참석한 사라 깁슨 교사는 "이번 기념정원 조성사업은 온전히 학생들의 작품"이라며 "직접 삽을 땅을 파고 돌을 깔았으며 꽃을 심었다"고 말했다.

특히 학생들은 휠체어에 탄 참전용사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진입로를 시멘트로 포장했다고 깁슨 교사는 설명했다. 기념정원은 일단 다섯 평 남짓의 아담한 정원의 모습을 갖췄으나, 학생들은 규모를 더 확장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같은 38도 선상에 놓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학생들에게 주는 유·무형의 '교육 효과'가 매우 컸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38선 획정 이후 한반도가 분단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흔히 '잊힌 전쟁'으로 불리는 한국전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교사들은 전했다.

중학교 2학년인 제살린 스완(13)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누가 한국이 어떤 나라냐고 물으면 아무 말도 못했었는데, 지금은 한국과 38선에 대해 너무나 많이 알게 됐다"며 "특히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스완은 이어 "한국전쟁과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역사를 제대로 알고 사람들에게 그 역사를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드 교사는 "기념정원 조성은 학생들의 사고와 정신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며 "자신들이 직접 낸 아이디어가 실제로 현실이 되고 많은 참전용사가 참석하는 큰 행사로 발전한 데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 22일(현지시간) 낮 미국 버지니아주 밀포드 카운티의 캐럴라인 중학교에서 이 학교 역사동아리 소속 학생들과 한국전 참전용사들, 주미대사관 무관단 등 모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8선 기념정원 벽돌기증식이 열렸다. 주미대사관 무관단이 기증한 벽돌에는 한·미동맹의 강건함을 상징하는 문구인 'R.O.K-U.S We Go Together'(같이 갑시다)가 쓰여져있다. 이날 기증식에는 주미대사관 신경수 국방무관과 장진호 전투의 주역인 스티븐 옴스테드 예비역 중장, 존 토머스 리치먼드 한국전쟁 참전용사회 회장이 참석했다. /밀포드=연합뉴스
=연합뉴스" dataend="imgend">이어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내려고 미국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고, 이를 토대로 오늘날 발전된 한국을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기념공원 조성을 추진 중인 역사연구 동아리의 학생 수는 3년 전만 해도 15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50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주드 교사는 말했다. 이들 학생은 앞으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활동에 나설 예정이며 한국전쟁 당시 주요 전투지역에 대한 전시물을 정원 주변에 추가로 배치할 계획이다.

이날 주미대사관 무관단이 기증한 벽돌은 기념정원 중앙의 바닥에 놓였다. 한·미 동맹의 강건함을 상징하는 문구인 'R.O.K-U.S We Go Together'(같이 갑시다)가 쓰인 벽돌은 참전용사들과 손자뻘인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됐다.

신경수 국방무관(육군 소장)은 감사말에서 "미국 학생들이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모든 분의 헌신을 기억하고 미래 한미동맹의 주역들로서 한미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신 무관은 이날 학생들에게 한국 관련 도서 50여 권을 기증했다.

행사에는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의 주역인 '영원한 노병(老兵)' 스티븐 옴스테드 예비역 장군(중장)이 참석했다. 옴스테드 장군은 행사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이 기념정원은 아주 좋은 상징물"이라며 "한국전쟁이 잊힌 전쟁이 아니라 승리한 전쟁이었고 잊힌 승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고 말했다. /밀포드<미 버지니아주>=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