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3센티미터

“여보, 오늘은 자전거 좀 탈까?”

남편이 월차를 하루 냈다. 연이은 밤샘근무로 힘들 법도 한데, 허리가 염려되어 괜찮겠냐고 묻자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여의도 벚꽃축제 한다잖아. 거기까지 가서 힘들면 전철로 돌아오면 되지 뭐.”

사실, 결혼하고 우리 부부 10년 차. 요즘 남들 말하는 권태기 같다. 서로에게 말도 많이 안 걸고, 아이들 덕에 거실에 모여 TV 보며 웃곤 하지만 그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곤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일을 한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의 학교 과제물과 학원 과제물 챙기기에 바쁘고, 남편은 우리가 비워놓은 거실이나 안방에서 홀로 기타 연습을 한다.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방문까지 닫고 하다 보면, 집에 남편이 있는지 없는지 나도 헷갈릴 때가 있다. 약간의 권태기는 누구에게나 오겠지만, 나는 이 시기를 누구보다도 잘 견뎌 내기로 결심해 왔다.

밤새 아이들의 뒤척임에 잠을 설쳐 컨디션이 제로였지만 남편과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도시락을 간단히 준비하고 각자의 물병에 커피와 물을 채우고 출발!

운동이 간만이었던 남편에게 전기자전거를 양보하고 나는 내 자전거에 올랐다. 남편과 벚꽃을 보러 축제 같은 장소에 가는 건 처음이라 설렘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라뱃길을 지나고 김포 갑문을 통과하고 나니 이제야 서울 입성이다. 아직 우리 동네는 추워서 벚꽃이 망울져 있기만 한데, 서울은 피었으려나… 했던 기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여의도에 다다랐을 때 눈앞이 환해졌다. 자전거를 거치대에 묶어놓고 걷기로 했다.

눈앞에 눈꽃터널이 펼쳐졌다. 날씨 또한 너무 좋아서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하얀 벚꽃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벚꽃이 가득 핀 거리를 따라 봄을 실은 바람이 나의 얼굴에 부딪힐 때마다 손잡은 우리 부부의 권태기도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초속 3센티미터. 벚꽃이 지는, 바닥에 떨어지는 속도라고 한다.

나와 남편은 2015년 봄을 이렇게 기억할 것 같다. 당신과 나의 권태기. 초속 3센티미터로 없어져 버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