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순 세종시 전의면장
우리가 살고 있는 세종시 전의면 '전의(全義)는 언제부터 불려져 온 것일까? 먼 옛날 백제 성씨인 전씨가 많이 살아서 전의라는 지명이 되었다는 설이 있고, 나라와 가정이 어려울 때 충신,유현, 효열 등 살신성인한 의로운 사람이 나와서 의향(義鄕)이라고 불렸다고 전해 오기도 한다.

전의지명은 시대별로 5번이나 바뀌어서(구지, 금지, 전성, 전기, 전의)라 했는데, 전동면과 소정면이 한 고을 이었다. 현재의 지명은 고려 태조 23년(940)에 전의현이 되어 오늘날까지 천년이상 불려 오고 있다.

전의는 산성이 많아 전성(全城)이라고 불렸을 만큼 산성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표적인 성은 운주산성, 금이산성, 이성, 작성, 증산성, 고려산성이 있으며, 천년고찰인 비암사가 종묘사찰로 전해오는 지역이다. 이러한 산성들은 백제의 왕도인 웅진성을 보호하기 위한 주요한 요충지로 백제 부흥운동을 하던 주류성이 전의지역의 산성군으로 최근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전의 토성은 이(李), 유(兪), 하(河), 전(全)씨 이며, 그중 전의이씨 시조가 되는 이치(李齒)는 삼한통합을 하던 왕건을 도와 공을 세우고 이도(李棹)라는 이름과 태사라는 높은 벼슬을 하사 받고 전산후에 봉해졌다.

전의면 관정리에는 성군 세종께서 한글을 창제하실 때에, 전의초수로 눈병이 나았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있어 일명 "왕의 물"이라고 부르고 "왕의 물 축제"를 해오고 있슴은 세종시 건설이 우연이 아님을 말해준다.

또한 이곳은 당시 집현전 학사인 박팽년 선생이 정착하여 살아서 '박동'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고, 세종 때부터 연산군에 이르기 까지 환관이었던 "김처선"도 전의 김 씨다

일찍이 조선전기 문신인 서거정 선생은 전의현을 노래하는 제영시에서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地分車峴自東西 땅은 차현(차령)에서 동과 서로 나뉘었고, 路入全城高復低 길은 전의성으로 들어서며 높았다 낮았다 하네, 山勢周遭圍近郭 산줄기 두루 연이어 성곽을 에워 쌓고, 樹陰繞護長堤 숲 그늘 빙 둘러 긴 언덕 보호 하네"

이제 오는 7월 3일이면, 전의 유래비 제막행사를 한다. 지난해 전의면 출범 100주년 행사로 기념식수를 하고, 이어서 전의의 정체성을 영구히 전승하고자 금석문을 세우기로 민간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애향인들의 정성을 모아 준비했다. 전의 유래비는 세종시의 발전과 더불어 영원한 기념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