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동기보다 먼저 현장경험 처음엔 막막
희소성 탓에 인정도 빨리받아 전화위복
부천서 주민갈등 해결하면서 많이 배워
■개발광풍 평택지역 사업계획과 전망은?
삼성의 고덕투자, 경제활성화 효과 예상
시가지 인접 소사벌지구 인구 유입 기대
고덕신도시 판매 ‘현장사령관 역할’ 최선
■롤모델로 삼는 후배들에 해주고 싶은 말
개인 삶·가정이 우선이란 말 공감하지만
조직은 열심히 하는 직원 결코 잊지않아
발주 담당자는 갑의 느낌 풍기지 말아야
얼마 전, 취직한 큰딸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던 중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면 언젠간 알아주니 최선을 다하라’고 조언했다. 그러자 딸이 웃으며 맞받아쳤다. “엄마, 요즘은 조직에 헌신하면 헌신짝 되는 거야.”
엄마도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이내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이 모여있는 최고의 공기업 LH에서 ‘첫 여성 부장’, ‘첫 여성 처장’, ‘첫 여성 본부장’ 등 전무후무한 역사를 쓰며 승승장구해 온 비결(?)을 늘어놓기로 한다. 지난 25일 오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 평택사업본부에서 김선미(54) 본부장을 만났다.
-지금이야 여직원들도 많지만, 당시엔 건설업계에 입사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결혼을 하고 큰딸이 4살 때 입사를 했다. 살림도 나름 즐거웠지만 공부도 할 만큼 했고 대학원도 졸업한 지 얼마 안된 상태였기 때문에 일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샘솟았다. 또 ‘지선이(큰딸) 엄마’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김선미’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마침 당시 ‘200만호 주택 공급’ 시기라 채용규모가 컸고, 분당·일산·평촌 등 신도시가 조성되던 때라 입사 이후에도 많은 업무를 배우기에 좋았다.
아무래도 조직문화가 남성 위주인 데다, 남성에게 유리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입사 3년 차가 됐을 때, 다른 동기들보다도 먼저 분당현장으로 발령이 났다. 당시엔 왜 내가 험한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지 서럽기도 했고, 현장에 근무하는 여직원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막막했는데 오히려 고생을 많이 한 만큼 인정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희소성이 있다 보니 조직 내에서 기억들도 많이 해주셨다. 현장에 가장 먼저 나간 대신, 승진도 가장 빨랐으니 말 그대로 ‘전화위복’이었다.”
“처음 현장 발령지였던 분당에서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근무했기 때문에 애착이 간다. 하지만 승진 이후 ‘현장소장’ 역할로 근무했던 부천상동지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본사에서 설계업무를 한 뒤 현장에 나가겠다고 했는데, 당시 단장이 ‘당연한 거 아니냐’며 보내주셨다. 설계와 시공을 소위 원스톱으로 한 셈이다. 그 덕분에 기술자로서 성장할 수 있었고, 소장이라는 책임자로서 인정도 받을 수 있었다.
부천 현장은 특히 주민들과의 갈등을 해결하면서 많이 배웠다. 주민들은 당연히 수준 높은 환경을 요구하고, LH는 주어진 예산 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양측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주민들이 퇴근 이후 밤늦게 총회를 원하면 퇴근을 반납한 채 기다렸고, 밤새 요구사항을 들은 뒤 정리하고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을 대하는 법도 자연스레 체득할 수 있었다.”
-개발 광풍이 불고 있는 평택 현장으로 전국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데.
“삼성이 평택고덕산업단지에 15조6천억원의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고, 2017년부터 반도체 생산라인이 가동될 예정이다. 벌써부터 지역경제 활성화와 경제활동 인구 증가 등의 효과가 예상되고 있는데, LH 역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2008년 이후 부동산경기 침체와 글로벌 외환위기 등으로 사업추진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올해 말 공동주택용지 3개 블록과 이주자택지를 최초 공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8년 하반기를 입주시기로 보고 있다.
비전동 일원의 소사벌지구도 상업용지와 주차장용지 등이 전량 매각되는 등 인기가 많다. 소사벌지구의 경우 기존 평택 시가지에 인접해 조성되기 때문에 인구 유입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사업지구 전체면적의 29%가 골프장부지와 붙어있는 청북지구도 다음달 3단계 사업준공을 앞두고 있다.
평택 현장의 사령관으로서 올해를 고덕신도시 판매 원년으로 삼고, 성공적인 사업추진에 매진할 계획이다.”
“큰 딸이 말했듯이, 요즘은 조직에 헌신하는 사람을 보고 어리석다고들 한다. 일보단 개인의 삶과 가정을 중시하는 것이 좋다는 것에도 극히 공감하지만, 사실 조직은 열심히 하는 직원을 결코 잊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 입사 후 15년까지는 현장에서 주말도 없이, 여관에서 며칠씩 밤샘작업도 많이 했다. 똑같은 월급을 받는데 이렇게 한다고 회사가 알아줄까 싶었지만, 지나고 보니 같이 일했던 상사들과 선후배들이 모두 기억하고 있더라. 기회가 되면 좋은 평가도 해주고 추천도 해주는 등 내가 노력한 만큼 나에게 그대로 돌아왔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특히 발주 업무에 있는 직원들의 경우 ‘갑’의 느낌을 풍길 수 있는데, 조심하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현장을 기피하고 사무실 안에서 근무하길 선호하는 직원들에게도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점들이 있기 때문에 꼭 추천하고 싶다.”
■김선미 본부장은?
▲ 1961년 12월 11일 출생
▲ 1980년 대전여자고등학교 졸업
▲ 1984년 서울대 조경학과 졸업
▲ 2009년 서울시립대 조경학 박사
▲ 1989년 입사
▲ 2011년 주택디자인처장
▲ 2013년 도시경관처장
▲ 2015년~현재 평택사업본부장
/글=신선미기자 ssunmi@kyeongin.com·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