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토박이주민 마당 텃밭에서
참조기 소금에 절이는 ‘간통’ 발견
할머니 “작은 곳엔 1만마리 저장”
전문가 “귀한증거 복원가치 높아”


사라진 줄 알았던 연평도 조기 파시(波市) 흔적이 아직 현장에 남아 있다. 196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번성했던 ‘해상시장’ 연평도 파시를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흔적에 학계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도 동진정 인근에 있는 이경근(90) 할머니의 집을 찾았다. 할머니 집 앞마당에 작은 텃밭이 있다. 텃밭 한가운데에는 수조처럼 생긴 가로×세로 2m짜리 정사각형의 시멘트 구조물이 있었다. 이경근 할머니는 “파시때 조기를 소금에 절이던 간통”이라고 했다.

간통은 연평도 앞바다에서 잡은 참조기를 소금을 넣어 절이기 위한 일종의 탱크다. 간통에서 3~4일 동안 절인 조기를 과거 자갈밭이었던 연평도 해변에 말리면 ‘굴비’가 된다. 간통은 보통 2~4m 깊이로 알려졌는데, 할머니는 간통에 흙을 메워 상추를 심었다.

연평도 토박이인 이경근 할머니는 파시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경근 할머니는 “조기를 간통에 조금 부으면 간통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정리해 소금을 치고, 또 조금 부으면 소금을 쳤다”며 “이건 작은 간통인데, 작은 거에는 조기 10동(1만 마리)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5~6월 연평도에 파시가 열리면 어선과 상선 수천 척이 섬으로 몰렸다. 이 두 달 동안 연평도는 사람과 돈이 넘치는 해상도시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1960년대 말부터 연평도 앞바다에서 조기가 잡히지 않게 되면서 연평도는 평범한 어촌이 됐다.

조기를 말리던 자갈밭 해변은 매립돼 건물들이 들어섰다. 파시는 순식간에 잊혔고, 관련된 흔적들도 대부분 사라졌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간통을 찾아낸 것은 연평도 주민이자 2013년부터 섬의 첫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순(53·여) 씨다. 김영순 씨는 “지난달 초 문화해설 준비를 위해 섬에 오래 사신 할머니 이야기를 듣다가 간통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섬에 파시의 흔적이 없어진 줄만 알았다”고 말했다.

2013년부터 조기 파시 역사문화 탐방로 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는 옹진군도 간통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조기 파시 탐방로는 옛 사진과 벽화 등 경관 시설물만 설치돼 있을 뿐이다.

파시 전문가인 김준 전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근현대 해양문화의 중심지였던 연평도에 박제화된 흔적만 남아있어 항상 안타까웠다”며 “유일하게 남은 흔적인 간통은 교육·연구를 위해서 복원할 가치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