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못잖은 장비·스마트폰 전시회 개최 ‘무너진 영역’
“인생 전환점” “삶의 활력소” 남녀노소 저마다 다른 의미
타인 신체 도촬·불특정 다수 유포 등 ‘부작용’은 아쉬움
인천대 학생 이종원(24)씨는 거의 매일 사진을 찍는다.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린다. 이씨가 사진을 찍는 장소와 주제는 제한이 없다. 항상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통해 즉흥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음식점에서 요리를 찍기도 하고, 오랜만에 찾은 동네 상가의 간판을 찍기도 한다.
길을 걷다가도 특이한 모습이 보이면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이씨는 이렇게 찍은 사진을 사진 공유 SNS인 ‘인스타그램’에 올려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자신의 생활을 사진을 통해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스마트폰으로만 사진을 찍지 않는다. 인천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이씨는 역사와 관련된 장소를 찾아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이렇게 촬영한 것은 페이스북에 게시한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사진을 보면서 소감을 나눈다. 자신도 다른 이들이 올린 사진에 댓글을 단다.
이씨는 “사진은 나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며 “말과 글로도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지만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은 다른 수단보다 더욱 직관적으로 나를 알리고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씨의 생활처럼 사진은 일상이 됐다. 사진 없는 삶을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 현재의 삶이다.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고 다른 이들의 사진을 본다.
30~40년 전만 해도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과거에는 명절, 소풍, 입학식·졸업식, 여행 등 주로 일상과 다른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찍은 사진을 사진관에서 현상과 인화를 거쳐 집에 있는 앨범이나 액자에 넣어 보관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진을 찍어서 그 자리에서 보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
사진의 ‘일상화’는 사진의 다양성으로 나타났다. 과거엔 기념사진과 전문가의 작품 사진이 대부분이었다면, 현재는 일상을 기록하거나 취미로 사진을 즐기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모두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다 보니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신체를 몰래 찍다가 경찰에 붙잡히는 일이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 의해 촬영되고, 그 사진이 불특정 다수에게 유포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채 셀카를 촬영하고, 남을 찍어 주기보다 자신을 촬영하는 데 열중하는 모습에 대해 ‘극단적 개인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마추어와 프로 사진작가의 영역 구분도 모호해졌다. 때로는 아마추어가 더 좋은 장비를 갖추고 있기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 전시회에서 호응을 얻기도 한다.
지난 4일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출사 현장을 동행했다. 이날 오전 7시께 경기 시흥시의 관곡지(官谷池) 인근 도로변은 이른 주말 아침 시간대임에도 이미 주차된 차들로 빼곡했다.
이곳은 조선의 한 사신이 명나라에서 새로운 품종의 연꽃을 들여와 처음 심었던 향토 유적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진 동호인들의 연꽃 ‘출사(出寫)’ 장소로 더욱 이름나 있다.
사진 동호인들은 햇빛을 가릴 수 있는 큰 차양의 모자, DSLR 카메라와 렌즈, 삼각대 등 전문가 못지않은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관곡지 연꽃을 자신만의 사진으로 담아내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인터넷 사진 동호회 ‘마음을 담는 사람들’ 운영자 경재현(58·경기 성남시) 씨는 새벽 2시에 이곳에 왔다고 했다. 밤에 피는 ‘수련’을 찍기 위해서다. 그는 “뷰파인더로 아름다움을 보고, 사진에 담는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사진을 즐기는 데에는 성별도, 직업도 관련이 없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최옥순(54·여·경기 용인시)씨는 사진을 배운 지 5년 정도 됐다. 그는 사진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했다. 그는 갱년기로 힘들던 때 남편의 권유로 사진에 입문했다. 남편과 함께 주말마다 전국 곳곳으로 출사를 다녔다.
최씨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야생화의 수술 하나하나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며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는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또 “남편과 함께 사진을 찍는 과정, 결과물 하나하나가 모두 추억이 된다”며 “갱년기 극복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회사원 박정구(46·서울 관악구)씨는 사진을 ‘생활의 활력소’라고 했다. 박씨는 “내가 생각한 구성과 의도대로 사진에 표현될 때 큰 희열을 느낀다”며 “남들이 흔히 보지 못하는 것을 내 사진에 담을 때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홍원표(76·인천 서구) 할머니는 “젊어서부터 등산을 했는데, 체력에 한계가 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며 “숨어있는 찰나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고 했다. 이어 “(출사를)나와서도 찍고, 집 뜰에서도 찍는다”며 “식구에게 사진첩 같은 걸 만들어 선물하면 그렇게들 좋아한다”고 했다.
이제는 ‘사진전’도 사진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다. 비전문가들이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전시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경성대 한창민(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흔히 ‘스마트폰 사진작가’로 불린다. 2013년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만으로 ‘한창민 사진전-지난 일년’을 열었고, 사진전을 열게 된 과정 등을 담은 책 ‘나는 찍는다. 스마트폰으로’를 집필했다.
한창민 교수는 “이제 사진은 밥을 먹고, 말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동 패턴이 됐다”며 “모두가 사진을 찍는 시대에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영역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마트폰 카메라와 DSLR 등 고성능 카메라는 각각의 고유 영역이 있다”며 “스마트폰 카메라는 성능이 점점 좋아지고 있고, 고성능 카메라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장점인 휴대성을 높이는 등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옥희의 영화’는 영화학과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는 사진이 일상화된 사회를 잘 표현하고 있다.
“요즘은 뭐 전 국민이 사진작가야.”
/이현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