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마루 걸터앉은 한장의 사진
수치스런 국권침탈의 아픔 상징
행궁 기단·난방시설 실증적자료
터만남은 유적 원형복원 큰 가치


“친애하는 여러분. 조선에서의 여름 두 달은 항상 특별한 일이 없기 때문에 그저 우리가 할일은 장마의 더위와 끈끈함을 견디며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서울에서 10마일(약 16㎞) 북쪽에 위치한 북한산 언덕 위에 버려지고 반 폐허가 된 행궁을 더위를 피할 목적으로 리스(lease)한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월세 내는 것을 대신해서 행궁을 수리 보존하기로 하였고, 매년 여름 이 곳은 더위를 피하는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수백년 된 조선 행궁은 서울보다 약 1천500피트(457m)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중앙 계곡을 향하고 있으며 측면 골짜기 중에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북한산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궁은 3개의 정원으로 꾸며져 있는데 계곡 측면의 완만하게 경사진 바닥을 잘라서 계단 형식으로 지어졌고 계단을 거칠게 잘린 커다랗고 네모난 대리석으로 장식했습니다.… 조선에서 주교로부터”

이 글은 대한성공회 마크 트롤로프(Mark Trollope) 주교가 1915년 모닝캄(MORNING CALM)에 기고한 글을 편집한 것으로, 북한산성 행궁이 산사태로 매몰되기 이전 모습을 그대로 알려주고 있다. 전란시 임시 수도의 궁궐로 사용해기 위하여 만들어진 북한산성 행궁을 성공회가 빌려 그들의 여름 피서지로 이용한 사실 그대로.

위의 사진은 트롤로프 주교의 글을 입증한다. 우리의 행궁에 영국의 국기인 유니언 기(Union flag)가 걸려 있다. 곤룡포에 익선관 대신에 성공회 신부복을 입은 신부와 수녀가 대청마루에 여유롭게 앉아있다. 거기가 어디라고! 감히, 왕만이 머물 수 있는 사적 공간인 행궁의 내전에서….

이 한 장의 사진에서, 제 나라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지엄하고 은밀한 속살까지 남에게 희롱당하는 듯한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수치스런 시간도 장면도 곧 역사, 문화유산의 원형 복원이라는 측면에서 이 한 장의 사진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북한산성 행궁의 기단과 가구, 단청과 난방 시설 등을 당시 그대로 복원케 하는 실증적 자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폭탄을 피해 알몸으로 뛰는 한 소녀의 사진 한 장이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여실히 드러냈듯, 이 한 장의 사진도 ‘국권상실의 아픔’을 역설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