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방금 재판에서 승소했다. 아니, 아예 공소가 취하됐다. 증거는 불충분했고 재판장에서의 그의 호소는 효과적이었다. 재판장 앞에는 그를 반기듯 반민특위(반민족행위 특별 조사위원회)를 해체하라는 시위가 열성적이다. 느긋하게 거리를 걷고 싶었다. 해방 조국이라는 좋은 세상이었다.

삶의 열기로 가득한 시장 골목을 지나자 옛 동지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묻는다. 왜 동지들을 배신했느냐고. 그의 항변은 명쾌하다. 몰랐다고. 해방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랬다고.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개봉 첫날 47만 관객을 기록했다. 천만 관객을 달성한 ‘도둑들’의 첫날 관객 수가 43만이었으니 흥행감독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기록이다. 그만큼 ‘암살’에 들인 공도 만만치 않다.

9년이라는 시나리오 집필기간과 순제작비 180억원, 전작 도둑들에 이어 톱 배우들의 출연은 이 작품에 들인 공을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장르적 시선으로 탁월하게 묘파해 온 감독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친일파의 암살을 둘러싼 인물들의 모습을 두 시간 넘게 장대한 스케일로 그려낸다.

독립운동을 소재로 하는 만큼 ‘암살’의 밑바닥에는 ‘애국’이라는 정서가 깔렸다. 여전히 상영 중인 ‘연평해전’이 국가주의에 기반을 둔 애국을 강조하고 있다면 ‘암살’은 민족주의적 애국에 기반을 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우리는 애국이라는 키워드에 시선이 붙잡혀야 하는 걸까? 그 애국은 어느 지점으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암살’은 당대의 시대적 모순이 장르화라는 과정에서 단순한 개인적 일탈로 변화되면서 역사와 현실에서 동떨어진 애국 판타지로 그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물론 김원봉이라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탁월한 독립운동 지도자의 등장이라든가 반민특위의 해체에 대한 시위 등으로 시대적 아이러니를 잡아내려고 한 노력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대중성과 오락성이라는 대전제와의 타협은 주제의 확장과 심화에 방해된다.

영화계에서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면 흥행에 실패한다는 징크스가 있다. ‘암살’이 그러한 통설을 깨고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대연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