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기존 비상발전 15분이상 걸려 공백 불가피
배터리처럼 전기 저장 획기적인 정전 해법
2017년까지 6250억 투입 10배 가량 확충
심야생산 전기도 버리지 않고 활용하기로
화석연료·원자력 의존도 낮춰 환경부담 ↓
한전, 소규모 독립전력망 등 신사업 탄력


지난 2011년 9월 15일 오후, 전국 곳곳이 갑작스런 정전으로 혼란에 휩싸였다. 9월이지만 한여름 못지않게 더웠던 이날, 전기공급이 끊기자 가정내 냉방기구가 멈춰 섰고, 기업체 사무실의 컴퓨터와 공장기계 모든 것이 꺼져버렸다. 예고치 못한 정전, 일명 블랙아웃(Black Out)사태를 맞은 것이다.

순간 누군가는 엘리베이터 안에 갇혔고, 병원 의료장비가 고장 나 급히 비상발전기를 가동해야 했다. 당시 군부대도 관측시설에 미쳤던 이상 현상이 정전의 영향이었음을 확인한 후 가슴을 쓸어내렸다.

국내에선 흔치 않았던 9·15정전 사태는 전력 사용이 최고치에 달하는 한여름이 아닌 9월에 벌어져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당시 한국전력은 여름내 풀가동한 발전기 중 25기를 수급량이 줄어든 시기에 맞춰 정비하고 있었다.

예비전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전력 소비량이 한여름 수준으로, 급속히 늘어난 것이 화를 키웠던 것. 한전은 전력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 과부하로 인한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순환 전력공급을 결정했다. 그 결과 각 지역은 4시간이 넘게 간헐적으로 정전을 겪게 됐다.

미국에서도 이러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다. 2003년 뉴욕시 전체가 정전으로 마비돼 60억 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고 복구에 꼬박 3일이 걸렸다. 황당하지만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급작스런 상황에서 현 기술력 유일의 해결책은 비상발전기 가동이 전부다. 만일 저장된 전력이 있어 비상시 공급된다면 더이상 좋은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저장 전력이 있다면 발전기 가동률이 줄어도 충분한 전기를 공급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어서 동화속 이야기처럼만 들린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이 한전 기술력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10일, 안성시의 서안성변전소에서 ESS(Energy Storage System) 준공식이 열렸다. 한전이 지난 2013년부터 종합 추진 계획에 따라 570억원을 투자, 서안성과 용인에 52MW 규모의 전기저장시설을 구축한 것이다.

시설 원리는 휴대전화나 노트북, 전기자동차의 배터리처럼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도록 하는 것. 비상용 예비 발전기는 작동부터 공급까지 약 15분 이상 시간이 걸려 순간 전력 공급에 공백이 발생하는 것과 달리, ESS는 즉시 전력 공급을 가능케 한다.

서안성과 신용인 변전소에 각기 저장된 전기는 ‘주파수 조정’용으로 사용된다. 일정한 품질의 전기를 공급하려면 60Hz의 표준주파수를 유지해야 하는데, 여기에도 전력이 필요하다. 현재 일부 발전기 최대 출력의 5%가량을 주파수 조정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번에 구축한 ESS는 여기에 쓰이는 전력을 보조한다.

한전은 올해를 시작으로 2017년까지 6천250억원을 투자해 10배 가까이 많은 500MW의 주파수 조정용 ESS를 구축할 계획이다. 지금은 주파수 조정으로만 활용되지만, ESS가 앞으로 전력 수급에 미칠 영향력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더 많은 전기를 저장할 수 있게 되면, 생산단가가 높은 발전소 가동을 줄일 수 있다.

24시간 가동되는 발전소에서 심야에 생산되는 전기는 지금까지는 버려졌지만, ESS에 저장해 두었다가 수요가 많은 시간에 사용하면 화석 연료나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발전소를 더 짓지 않아도 되니 환경 부담도 줄어든다. 민간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상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한전 관계자는 “ESS와 전기자동차의 리튬이온 배터리는 같은 원리로 작동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전기 자동차를 이용해 각 건물의 전력 수급을 조절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충전된 전기 자동차의 전력을 필요시 건물에 차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 각국에서도 태양광, 풍력 등 신 재생 에너지 발전 설비와 더불어 ESS 설치를 의무화 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2020년까지 전력회사들이 공급전력의 5%까지 ESS를 설치하도록 했다. 일본과 독일 등에서도 보조금을 지급하며 기업 및 가정의 ESS설치를 독려하고 있다.

한전은 이 밖에도 에너지 신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전 경기지역본부에 따르면 도서지역 등 전력계통 고립지역에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발전 설비와 ESS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 저장, 공급할 수 있는 소규모 독립 전력망인 ‘마이크로 그리드(Micro Grid)’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도서지역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또한 전력 손실 없이 대용량 에너지 전달이 가능한 전력 전송기술 개발, 원격 검침과 사용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합리적인 전기사용을 돕는 지능형 검침 인프라 구축 사업도 순항하고 있다.

경기지역본부 권춘택 본부장은 “경기지역본부는 전력판매량, 판매수입, 보유 설비 규모에 있어 전국 최대규모의 본부로, 경기 남부지역 16개시 240만 가구의 전기공급을 담당하고 있으며 지역 내에 반도체 등 첨단산업이 밀집한 ‘수도권 전력 공급의 전진기지’라고 할 수 있다”며 “완벽한 설비관리와 첨단 기술의 활용으로 전력 강국을 만드는데 앞장 설 것”이라고 말했다.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