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병대장 ‘총섭’ 임명 때도 시끌
보다못한 승도들 관련규정 제작
북한산 산영루 바위에 글귀 새겨
한 해 많은 등산객이 북한산을 찾는다. 대부분 최근 복원된 산영루 앞을 지난다. 산영루 맞은편에 북한산성을 거쳐 간 관리들을 기리는 선정비가 길게 늘어서 있다.
비 사이의 바위에 새겨진 ‘북한승도절목(北漢僧徒節目)’이 있다. 이 암각문은 1855년(철종 6년)에 바위에 새긴 조목(條目)은 방문(榜文)에 가깝다. 마치 대학가에 나붙던 대자보(大字報)처럼.
암각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산성은 국가 방어시설이다. 이곳 북한산성의 방어를 위해 사찰을 세우고 승도(승병)를 모집해왔다. 최근에 승도가 없어 사찰이 피폐해지고 산성 방어도 못 하고 있다. 또 최근 승병대장인 총섭(總攝)이 교체될 때마다 성 밖의 승려로 임명돼 폐단이 일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승도들이 성을 지키려는 뜻을 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총섭 임명에 대한 규정을 정해 바위에 새긴다. 규정에 의해 시행하고, 법령을 어기지 마라’고 새겨져 있다. 이어 그들의 요구사항이 소개된다.
투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후보자 명단 위에 각기 권점(○표)을 해 가장 많은 권점을 얻은 자를 총섭으로 임명할 것, 산성 밖 승려가 임명되도록 한 자는 관청에 소송해 규정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할 것, 마지막으로 이 모든 규정은 승도들의 권리보장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밝혔다.
암각문에서 볼 수 있듯이 19세기 후기 조선의 인사시스템이 붕괴 되면서 낙하산 인사가 빈번했다. 북한산성의 총섭 선발도 예외는 아니었다. 청탁 인사와 낙하산 인사가 난무했다.
이를 막기 위해 산성 내 승도들은 인사규정을 만들어 공포하고, 규정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단체행동을 하겠다는 결의행사를 벌였다. 결과야 어찌 됐든 50여 년 후 조선은 국권을 상실한다.
공교롭게도 이 대자보가 새겨진 해에 태어난 황현(黃玹, 1855~1910)은 ‘매천야록(梅泉野錄)’을 통해 조선 말기 사회의 매관매직(賣官賣職)을 통렬히 고발했다. 인사문란은 통치체제의 근본을 뒤흔들고, 국치(國恥)를 일으킨 주원인이 됐다.
수많은 탐방객이 이 암각문을 눈여겨봤으면 한다. 장차 북한산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현재 그 준비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음도 기억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