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절엔 밥도 못먹고 온종일 일해
90년대 후반 쇠퇴… 이젠 동네명물
“미용사된 아들 너무나 자랑스러워”


미군 물자를 수송하던 옛 기찻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골목길을 따라 의정부 금오초등학교 방향으로 걷다 보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 사이 고풍스런 이발관이 눈에 들어온다. 의정부시 금오동 꽃동네 ‘금오이발관’.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어서 오세유”란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마냥 정겹기만 하다.

이발사 김응환(70)씨는 이곳에서 무려 40여 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의 손가락에서 펼쳐지는 가위질은 올해 칠순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힘이 넘치고 능수능란하다. 기력 또한 왕성해 손님의 머리 손질을 마칠 때까지 30여분을 꼬박 서 있어도 지친 기색 하나 없다.

그는 “손님이 몰릴 때면 3~4시간을 계속 서 있을 때도 있지만, 머리를 깎는 동안에는 피곤한 줄 모르고 일에 열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씨가 이발업을 한 지는 올해로 44년째다. 고향인 충남 서산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집안 농사일을 도맡아 오다 다소 늦은 나이인 스물여섯 살(1971년)에 군 입대를 앞두고 고향 선배들의 권유로 이발을 시작한 것이 천직이 돼버렸다.

김씨는 “당시 이용 기술이 있으면 군 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고향 선배들의 말을 듣고 곧바로 교습학원으로 달려갔다”며 “제대한 뒤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해 이발사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4~5년 보조 이발사로 일하다 결혼 뒤 지금의 의정부 금오동에 터를 잡게 된 김씨의 이발관에는 한때 발 디딜 틈 없이 손님이 찾아들던 호시절도 있었다.

그는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 만큼 바쁘게 머리를 깎고 돌아서면 또 다시 손님 머리만 들여다보고 있어야 했다”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1970~80년대 짧고 단정한 군인 머리를 권장하던 시절 남성의 머리 손질은 당연히 동네 이발소가 전담했다. 동네마다 보통 2~3개의 이발소가 있을 만큼 오늘날 미용실의 인기에 버금갔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미용실의 약진과 퇴폐 이발소의 범람 등으로 이발소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김씨의 이발관은 시대의 모진 풍파 속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며 옛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동네 명물이 됐다.

김씨는 “자신의 뒤를 이어 미용사가 된 아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며 “이발은 나의 천직이고 손님의 머리를 깎아드릴 때가 가장 행복해유”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의정부/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