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로 둘러싸인 섬 지역은 내륙보다 비교적 설화가 많이 남아있으며, 설화의 원형도 잘 보전돼 있다. 옹진군은 인천 내륙의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해5도인 연평도를 비롯해 옹진군 전역에서 어업의 신으로 떠받드는 임경업 장군 설화가 있고, 백령도가 주요 무대 중 하나인 심청 설화가 있다. 대청도에는 원나라 황제인 순제(順帝·1320~1370)가 유년시절 귀양살이를 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각 섬의 특정 장소나 지명에 얽힌 이야기도 많아서 설화를 알고 현장을 찾아가면 색다른 재미도 누릴 수 있다. 앞으로 옹진군 섬을 찾는다면 오래된 가게에 들러 주인장에게 섬에서 전해지고 있는 오래된 이야기 하나쯤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어업의 신 임경업 장군
조선 중기 명장 ‘조기잡이 시초’ 신으로 모셔
연평도 안목어장 ‘어살’ 40개 설치 전통 조업

병자호란 패전 직후, 의주 부윤이던 임경업 장군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구하겠다고 다짐한다. 임 장군은 상인으로 위장해 중국에 잠입하기로 했고,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가는 뱃길 중간에 있는 연평도에 정박했다. 식량과 식수 등을 구하기 위해서다.
연평도 조기잡이 배 선원으로 일했던 노창식(76) 씨는 “이 대목에서 어떤 사람은 겁을 먹은 선원들이 임경업 장군이 구출작전을 포기하게 하려고 몰래 식량과 식수를 바다에 버렸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풍랑을 만나는 바람에 식량이 몽땅 떠내려갔다고도 한다”고 말했다.
식량이 필요했던 임 장군은 안목이라 불리는 연평도 앞바다에 물이 빠졌을 때 부하를 시켜서 가시나무를 촘촘히 박도록 했다. 바닷물이 안목에 들어왔다가 나가자, 가시나무에는 황금빛 조기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연평도 안목어장에는 임 장군이 가르쳐 줬다는 방식대로 ‘어살’ 40여 개가 설치돼 전통 방식의 조업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는 조선 초 이미 연평도에서 조기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임경업 장군을 조기잡이 시초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섬 주민들은 임경업 장군을 조기잡이의 시초라 여기고 사당을 지어 풍어를 기원하는 신으로 모셨다.
임경업 장군 설화는 옹진군 다른 섬에도 남아있다. 자월도에는 ‘팔선녀 뿌리’라고 부르는 포구가 있다. 1640년 4월 임경업 장군이 청의 요구로 전선 120척에 수군 6천여 명을 이끌고 명·청 전쟁에 참전하러 가는 도중 자월도에 들렀는데, 섬 주민들이 어여쁜 여자 8명을 뽑아 포구에 나란히 서서 임 장군을 환영했다는 것이다.
#심청과 백령도
백령도 두무진-北황해도 장산곶 사이 ‘인당수’
심청전의 근원 ‘인신공희’ 설화 여러편 전해져

옹진군은 심청 설화를 바탕으로 1999년 백령도 진촌리에 심청각을 건립했고, 가천문화재단이 ‘효녀 심청 동상’을 제작해 기증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가천문화재단은 ‘현대판 심청’을 찾는 심청효행대상을 매년 공모해 선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은 시인이 백령도와 심청을 소재로 쓴 ‘백령도에 와서’ 시비가 심청각에 세워졌다.
설화 연구자들은 이들 지역이 심청 설화가 탄생한 지역인지, 아니면 소설 심청전을 토대로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인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소설 심청전의 근원설화 중 하나인 인신공희(人身供犧) 설화가 백령도에서 여러 편 전해진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인 게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삼국시대 백령도의 옛 이름인 곡도(鵠島)를 배경으로 한 ‘거타지 설화’다.
거타지는 신라 진성여왕 때 왕자인 양패(良貝)가 이끄는 당나라 사신단을 호위하기 위한 궁사 50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사신단은 당나라에 가는 도중 곡도(백령도)에서 풍랑을 만나 꼼짝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날 밤 양패가 꾼 꿈에 나타난 노인이 활을 잘 쏘는 사람 한 명을 섬에 남겨두고 떠나면 배가 순풍을 얻는다고 했고, 제비뽑기를 통해 거타지가 남겨지게 됐다. 곡도에 남겨진 거타지는 서해의 신인 노인을 도와 사람의 간을 빼먹는 늙은 여우를 처단하고, 그 보답으로 노인 부부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다.
옹진군 설화를 채록하고 연구한 남동걸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은 “거타지 설화는 심청전 후반부와 기본 골격이 유사하다”며 “백령도는 신라 이래로 중국과 왕래하는 항로의 중간 기착지라는 지리적 위치도 심청설화 전승이 많은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많은 섬 이야기들
덕적군도, 선단요 등 바위 연관된 얘기가 다수
대청도 유배 원 순제, 드라마 ‘기황후’ 유명세

덕적군도는 바위와 관련한 전설이 많다. 굴업도 인근에 있는 선단여는 덕적군도에 살던 망구할매가 오줌을 누는 봇돌로 사용했다고 한다. 망구할매는 바다와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이자 덕적군도 탄생 설화의 주인공이다.
소야도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우뚝 솟아있는 장사바위는 덕적도에서 제일가는 장사가 바닷가에서 굴을 따던 여인의 뱃속에 잉태된 또 다른 장사가 될 아기를 보고 너무 놀라 선 채로 굳어진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덕적도 진리에 있는 선돌바위는 척박한 땅을 열심히 일궈 부자가 된 농부 이야기가 서려 있다.
1230년대 몽골군 침입으로 고려가 개성에서 강화도로 천도하자, 많은 강화 토박이들이 장봉도로 건너왔다는 얘기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강화도에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고, 귀족들이 땅을 차지하는 바람에 토박이들이 못 살겠다며 장봉도로 떠난 것이다. 이 시기 장봉도에서는 원주민보다 많은 강화도 사람들의 위세가 대단했다고 한다.
대청도에 유배 온 원 순제 설화는 TV 드라마 ‘기황후’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다. 계모인 황후의 미움을 사 고려의 외딴 섬으로 쫓겨온 원 순제는 자신을 없애버리려는 계략에 두 눈을 잃었지만, 결국 시력을 되찾고 황제에 오른다는 이야기다.
대청도에는 옥죽포(玉竹浦)·고주동(庫柱洞) 등 원 순제와 관련한 지명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가 머물던 궁궐터는 현재 대청초등학교 자리라고 전해진다.
남동걸 상임연구위원은 “설화는 당시 시대의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이야기”라며 “특히 고립된 지역인 섬은 설화의 원형이 잘 보전돼 있지만, 최근 자연스러운 전승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