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민간단체, 해외 문화재 반환을 위해 외롭게 싸우는 시민단체,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세계시장에 도전장 내민 청년벤처인,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치던 한일월드컵 길거리 응원단…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이 극에 달했던 1940년 9월 17일. 중국의 임시 수도 충칭(重慶)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이 창설됐다.

광복군은 1943년 8월부터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합동작전을 벌였고, 비록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미국 전략사무국(Office of Strategic Service·OSS)과 함께 국내 진입작전인 독수리 프로젝트를 준비하기도 했다.

이들의 세력과 활약상은 비록 일본 패망에 결정적·직접적 타격을 줄 만큼 강건하지는 못했지만, 그 열정과 투지만큼은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며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한다”는 광복군 선언문에 적힌 창설 목적 그대로였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미 군정 당국 아래 해체되기까지 엄연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였던 것이다.

광복 70년이 된 지금, 대한민국 곳곳에서 다시금 광복군이 부활하고 있다. 이들에겐 M1 카빈 소총도 암살용 폭탄도 손에 들려 있지 않지만, 대신 세계를 놀라게 할 기술력과 나름의 사명감으로 중무장한 채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

각각의 분야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애국심을 바탕으로 새 지평을 열고 있는 이들의 행보는 70여년 전 광복군과 너무도 닮아있다.

세계의 높은 벽에 맞서며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기업인, 아이디어와 열정 하나로 당당히 세계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청년 벤처인,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민간 단체들… 우리는 이들을 ‘신(新) 광복군’이라고 부른다.

IMF 국가위기 때 장롱 속 금반지며 금목걸이를 들고 나왔던 국민들도, 한일월드컵 당시 길거리고 쏟아져 나와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치던 응원단도, 해외 문화재 반환을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들도 모두 당당한 신 광복군의 일원이다.

분단의 아픔 속에서도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 당당한 선진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들 신 광복군의 열정과 활약이 밑바탕이 됐다.

민간외교단체 관계자들은 “기적이라고 평가받았던 한국의 경제성장이 침체의 늪에 빠지고 전쟁 가능 국가로 둔갑한 일본이 우경화에 빠진 요즘 신 광복군의 역할이 보다 커졌다”며 “대일 항쟁기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바친 과거 광복군처럼, 제2의 광복을 위해 신 광복군들이 활약할 때”라고 말했다.

/김민욱기자 kmw@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