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어사 박문수 등 이야기 ‘가득’
주산 오른쪽에 돌려앉은 이천 영월암
풍수적으로 좌우 균형 안맞아 아쉬움
고려초 지어진 국가사적 하남 ‘동사지’
고속도로·송전탑에 기 흩어지는 형국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들이
흥하기도 하고 쇠하기도 하니、
땅이 그리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의 손에 운명이 바뀌기도 하는구나。
역사가 오래된 사찰들은 풍수적으로도 안정된 곳에 자리를 잡은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회암사지와 고달사지를 둘러보며 느꼈던 것처럼, 일부 사찰들은 풍수적으로 부족한 곳에 자리를 잡아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 좋은 봉우리들이 솟은 안성 청룡사
안성시 서운면에 자리한 유서 깊은 사찰 청룡사(靑龍寺)는 지금도 많은 신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경기 남부지역의 명찰(名刹)이다. 고려 원종 6년(1265) 창건되고, 공민왕 13년(1364)에 나옹에 의해 중창됐다는 청룡사는 당초 ‘대장암’이라 이름 붙여졌다.
하지만 나옹에 의해 크게 중창될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서기가 가득한 가운데 청룡이 나타나 오르내려, 청룡사라 고쳐 부르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신도들로 북적이는 청룡사를 찾아가 주변을 둘러보니, 웬만한 명당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청룡이나 백호가 거의 없어 의외였다. 청룡과 백호는 터의 좌우를 감싸고 돌며 나쁜 기운이 들어오고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때문에 청룡과 백호가 좋은 터는 아늑하고 평온하다.
“청룡과 백호까지 잘 감아 돌았으면 명당 중의 명당이 되었겠지요. 하지만 이곳은 청룡·백호가 없는 대신, 주변에 좋은 산들이 많아서 좋은 기운을 끊임없이 전해주고 있어요. 게다가 이런 좋은 산들이 겹쳐지거나 출렁이지 않고 각각의 봉우리들이 하나씩 딱딱 떨어지는 형태여서 풍수적으로 더 좋아요.”
조광 선생의 설명처럼 청룡사 대웅전 앞에서 둘러보니 왼쪽 뒤와 오른쪽 앞으로 토체(土體)들이 줄지어 서 있다. 멀리 앞쪽에는 뾰족한 모양의 문필봉(文筆峰)이 서 있어 수양하기 좋은 곳임을 알려주었다. 영상사(領相砂)와 부봉(富峰)들도 여럿 서 있다.
덕분에 청룡사는 옛날부터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풍족함을 누려왔다. 천대받던 안성 남사당패를 겨울마다 거둬들여 따뜻하게 돌봤던 것도 이런 풍족함 덕이다. 흉하거나 거칠게 생긴 산이 없이 부드럽고 풍족한 모양의 산들로 둘러싸인 청룡사는 그런 산들처럼 따뜻한 인정을 갖게 된 것이다.
■ 명당에 자리한 칠장사
안성을 둘러 보면서 청룡사와 더불어 가장 기대를 많이 했던 곳이 유명한 고찰(古刹) 칠장사(七長寺)였다. 칠장사는 636년(선덕여왕 5)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고찰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안성지역의 명소이기도 하다.
국보 제296호 칠장사오불회괘불탱(七長寺五佛會掛佛幀)과 보물 제488호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는 이 사찰이 오랫동안 얼마나 중요시 여겨졌는지를 짐작케 한다.
안성 죽산면에 자리한 칠장사는 경내에 들어서는 순간 묵직하고 안정된 느낌이 든다. 신도들로 북적이는 청룡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곳에는 칠장사와 칠현산의 이름 유래가 담긴 혜소국사 이야기를 비롯해, 병해대사가 이곳에서 임꺽정에게 무술과 글을 가르친 이야기, 어사 박문수가 이곳에서 기도를 한 후 장원급제를 했다는 이야기 등 책 한 권을 엮어도 될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온다.
특히 어사 박문수 이야기 때문에 칠장사에는 입시 때마다 많은 학부모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칠장사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풍수적으로 명당의 요건을 잘 갖추고 있다. 주산인 칠현산 자락이 팔을 뻗어 좌청룡·우백호를 이루고 있는데, 일부러 깎아 놓은 듯 적당한 높이로 사찰을 품어 안으며 곳곳에서 영상사와 토체와 일자문성(一字文星)을 이루고 있다.
특히 멀리 앞쪽으로 그린 듯 삼각형으로 솟아있는 영상사는 조광 선생도 감탄 할 만큼 일품이다. 이런 명당에 오밀조밀 들어앉은 대웅전과 법당들은 더할 나위 없이 푸근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조광 선생은 “전국의 여러 사찰을 다녀봤지만, 이곳 칠장사는 올 때마다 감탄을 하게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아쉬움 남긴 영월암
이천 시가지의 서쪽편에 솟은 이천의 진산(鎭山) 설봉산에는 유서 깊은 사찰인 영월암(映月庵)이 자리해 있다. 영월암은 신라 문무왕때 의상이 창건했다는 사찰로, 대웅전 뒤쪽으로 온화하게 서 있는 영월암마애여래입상(보물 제882호)이 오랜 역사를 대변하는 듯하다.
하지만 영월암의 대웅전은 설봉산의 동쪽편 산비탈에 마애여래입상이 서 있는 작은 언덕을 뒤로 두고 남쪽을 바라보며 서 있다. 대부분의 명당이 주산을 뒤로 놓고 탁트인 앞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것과 달리 주산을 오른쪽으로 두고 돌려앉은 모양새다.
때문에 오른쪽 위로 솟은 설봉산의 주봉 희망봉이 커다란 백호를 이루고 있고, 왼쪽은 청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내리막 비탈이 되었다.
“풍수적으로 볼때 균형이 맞지 않는 형국이지요. 청룡은 명예를 상징하는데, 이처럼 청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으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이름을 떨치기 어려울 수 밖에 없어요. 아쉬움이 남는 곳이네요.”
■ 사람이 망가뜨린 하남 춘궁동 동사지
하남시에는 한때 일대에서 손꼽히던 사찰이었다가 지금은 흔적만 남은 춘궁동 동사지(桐寺址)를 찾아갔다. 고려 초기에 창건된 동사는 넓은 터에 옛 영화를 짐작케 하는 유물들이 일부 남아있어 지금도 국가사적(사적 제352호)으로 지정돼 있다.
지금은 같은 이름을 가진 작은 절이 자리해 있는데, 절 마당에 놓여있는 커다란 초석들로 짐작할 때 옛 동사는 금당의 규모가 경주 황룡사 못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넓은 절터 한쪽에 당당히 서 있는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2호)과 삼층석탑(보물 제13호)도 예전의 위세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비록 절터는 북쪽을 바라보고 있지만, 뒤쪽으로 주산이 우뚝 서 지켜주고 있는 데다가 좌우로 청룡과 백호가 잘 감싸고 있어요. 주춧돌을 보니 중심 건물이 딱 좋은 자리에 서 있었고, 가운데 커다란 제단이나 부처님을 모셨던 것으로 보이는 8각형 구조물이 있는데 풍수를 잘 따져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하지만 동사지를 둘러보는 동안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 보다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사찰의 바로 앞에 고속도로가 지나고 커다란 송전탑까지 서 있는데다가, 한쪽 옆으로는 고철 처리장까지 있어 좋은 기운이 사방으로 흩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풍수적으로 좋은 곳이라도 길을 내면서 산을 허물고 산에 송전탑 같은 커다란 구조물을 세우면 의미가 없어지는 법이지요. 자연이 만든 좋은 땅을 사람이 망가뜨린 셈입니다.”
조광 선생과 취재팀은 아쉬운 한숨을 내쉬며 동사지를 나서야 했다.
/글·사진=박상일 기자 metr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