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피해자 직접 만나 수집
상하이 사범대 역사관 조성
일제 자료 연구·만행 폭로
중국 하이난성의 린쓰구(林石姑) 할머니는 지난 1940년, 일본군 진군과 함께 행복했던 삶이 초토화됐다. 약혼자까지 있던 그는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일본군이 올 때마다 산속으로 들어가 숨어지내는 등 그야말로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당시 일본군 장군은 아름다웠던 린쓰구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약혼자가 보는 앞에서 일본군 장군에게 겁탈을 당했다. 약혼자는 이를 말리려다 폭행당해 끝내 숨졌다. 1943년에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딸까지 낳았지만, 일본 패망 후 일본군 장군은 딸만 데리고 돌아갔다.
린쓰구 할머니에 대해 말하던 리샤오팡은 끝내 고개를 떨궜다. 아직도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해야 할 피해자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그가 중국과 한국, 타이완 등지에서 직접 만난 위안부 피해자만 100여명. 고작 면적 2천여㎡의 전시회장은 너무나도 넓어 보였다.
18일 중국 항저우시 항저우도서관에서 개최된 ‘항일전쟁승리 70주년 위안부 전시회’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존의 증거인 손도장과 사진, 생생한 증언 등이 전시됐다. 이는 모두 리샤오팡이라는 항일전쟁 연구학자 홀로 이뤄낸 것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치부가 서서히 밝혀지면서 중국 언론에서도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싼리에 저장성 신문사 출판국 부국장은 “리샤오팡 선생 혼자서 이 방대한 작업을 해내다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고, 량량 항저우 도서관 부관장은 “항일전쟁 승리 70년을 맞아 전시회가 열렸다. 역사를 잊지 말자”고 전했다.
리샤오팡은 “항일전쟁 연구 중 위안부의 실상에 대해 알게 돼 100여명을 직접 만나 자료를 수집했다”며 “최근 중국 정부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전시회까지 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중국 위안부 연구 최고 권위자인 쑤즈량 교수는 중국 최초로 교내에 위안부 역사관을 만들어 대중에 공개하고 있다.
앞서 지난 17일 ‘위안부, 일본군 성노예 역사기록 전시회’가 열린 상하이사범대학교 위안부 역사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나온 만삭의 위안부 사진 속 박영심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박 할머니는 중국 윈난성 지역에서 미군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돼 목숨을 건졌지만 아이는 유산됐다.
이 사진을 발견한 것도, 사진 속 주인공이 박 할머니라는 것도 모두 중국의 연구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한국인으로 중국에 끌려갔다 일본군 위안부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뒤 해방 후에도 중국에 남은 모은매(후베이성), 이봉운(헤이룽장성) 할머니 등도 마찬가지 사례다.
중국에서는 이렇듯 자신들이 겪었던 아픔을 하나둘씩 기록해나가고 있다. 특히 쑤즈량 교수는 상하이 지역의 위안소만 166곳에 달했다는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이중 조선인이 끌려간 위안소는 모두 27곳으로 한국의 위안부 연구와도 맥이 닿아있다.
쑤즈량 교수의 제자 첸 지안싱(상하이사범대 대학원 중국 위안부 연구중심)은 “최초의 위안부는 일본 해군에서 시작돼 계속 번져나갔다”며 “당시 설치된 위안소부터 피해자는 물론 군인과 의사 등 관련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시성을 중심으로 위안부 100여명을 조사한 장솽빙 작가도 빼놓을 수 없는 위안부 연구자다. 그는 조사를 토대로 ‘위안부 조사실록’을 펴냈고, 다음달 중국에서 위안부를 소재로 개봉하는 영화 ‘대한(大寒)’에도 출연한다.
앞서 광복 70년을 맞은 한국에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중 협력의 현황과 과제’ 토론회에도 패널로 참석, 한·중 국제연대에도 힘쓰고 있다.
장솽빙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아직 살아있다.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조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항저우·상하이/조영상·강영훈기자 kyh@kyeongin.com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