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튄다. 다급한 고함과 고통에 찬 비명이 난무한다. 포탄이 선체를 때리고 총탄이 살을 찢는다. 카메라가 바쁘게 움직이며 클로즈업한다. 그 시선에 붙잡힌 것은 찢긴 살과 흐르는 피의 처참함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전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훼손된 몸의 이미지를 착취당하고 있을 뿐이다.

‘연평해전’이 600만 관객을 넘어섰다. 두 달에 가까운 상영 기간 탓에 ‘꼬리 끌기’라는 비아냥거림이 있지만, 메르스 여파 등 악재와 블록버스터들의 틈바구니에서 관객 수 600만이라는 성과를 올린 것은 어쨌건 쉬운 일은 아니다. 흥행 전략인 ‘애국마케팅’의 효과도 컸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꼬리 끌기나 애국마케팅, 이념 논쟁 등과 관련된 논란 말고도 연평해전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하나 남은 것 같다.

영화는 ‘제2연평교전’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니 그것까지도 포함해 재난영화의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영화가 보는 시선에서 연평해전은 전쟁이 아니라 재난이다. 재난영화는 공포영화와 맥을 같이 한다. 표면적으로 공포영화의 희생자는 개인인데 반해 재난 영화의 희생자는 대개 집단이라는 사실이 눈에 띄는 차이일 것이다. 재난이 무서운 것은 감당하기 어려우며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일상 밖으로부터 다가오는, 납득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이며 절대적인 힘을 지닌 어떤 것이다.

재난영화는 ‘등장인물들의 일상-재난의 조짐-재난 발생-재난의 극복’이라는 기본 구조를 지닌다.

그런데 연평해전에는 공포의 해소를 위한 ‘극복’의 단계가 배제돼 있다. 유족의 슬픔과 정부의 무능이 후일담처럼 그 자리를 메운다. 결국 공포는 사라지지 않고 관객의 마음속에 남게 된다. 영화를 둘러싼 현실적 조건이나 애국, 반공 등의 이념은 접어두고라도 ‘무엇’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영화는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

영화의 몇 장면에서는 실제 기록영상이 삽입됐다. 붉은 물결로 뒤덮인 월드컵 거리응원 장면과 장례식 장면,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나오는 쿠키 영상 등이다. 모든 것이 사실이고, 실존했던 인물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적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실존인물들의, 괴기스러울 정도로 처참하고 노골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대연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