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한강 유역과 문화 달라
바닷길 가까워 호남과 더 친밀
김포서 마한식의 분구묘 발굴도
中·부여 유물등 교역 사료 출토


‘무덤’하면 보통 땅을 파서 그 안에 관을 묻고 봉분을 조성하는 토광묘(土壙墓)를 떠올린다. 지난 2009년부터 김포에 한강신도시를 개발하면서 문화재 발굴조사가 이뤄졌는데 김포 운양동과 양곡 일대에서 ‘분구묘(墳丘墓)’라 불리는 마한(馬韓)의 묘제가 발견됐다.

분구묘는 토광묘와는 다른 방식으로 축조된 독특한 묘제로, 흙을 다져 돋운 분구(봉분)에 토광형식으로 중심부를 파내 시신을 안치하고 그 위에 다시 봉분을 올린 방식이다. 주로 서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돼 있으며, 경기 내륙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뚜렷한 지역성을 보인다.

고고학계에서는 이런 지역성을 근거로 경인 연안을 범 마한 문화권에 속한다고 본다. 하지만 한강 유역과 성격을 달리하는 지역 문화가 경기 서해안 연안에 있었다고 본다. 이는 인천 시민 중 3분의1 정도가 대전·충남 출신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육상 교통이 발달하기 이전, 경인 연안은 경기 내륙보다는 바닷길을 통해 호남·호서 지역과 더 긴밀하게 교류했고, 그 결과 같은 문화적 전통을 지녔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렇듯 먼 삼한시대의 분구묘는 현재 인천·김포 지역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말해 준다.

경인 연안의 분구묘를 대표하는 유적은 김포 운양동 유적이다. 이곳은 중국 지린성 소재 부여인(夫餘人)의 무덤에서 발굴된 1천800년 전 금귀걸이와 같은 모양의 금귀걸이, 그리고 독특한 형태의 철검(鐵劍)이 출토돼 주목을 받고 있다. 또 영종도에서는 토기·기와·화살촉 등 중국 한(漢)나라의 유물과 함께 대표적인 중국 동전인 오수전(五銖錢)이 꾸러미로 발굴됐다. 이국적인 유물 조합은 당시 대중국 교역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인 연안과 도서 지역에서 발굴된 외국 유물은 바닷길을 통해 외국과의 인적·물적 교류가 이뤄졌음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동시에 이 지역이 기원전부터 서해를 통해 한반도로 들어오는 ‘교류의 길목’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지금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이 우리나라의 관문 구실을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며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입지적 필연성을 느끼게 한다.

경인 연안에서 출토된 이국적인 금귀걸이·철검·그릇·중국 동전 등의 발굴 유물을 통해 2천여 년 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해외 구매가 활발히 이뤄졌다는 사실과 바다 건너 중원은 물론 멀리 부여까지 교류했던 사실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다. 

또 그런 유물들이 매납됐던 무덤을 근거로 경기 연안의 문화가 먼 과거부터 서해안 문화권에 포함됐던 사실도 알려준다. 이 모든 사실은 땅속 매장문화재 발굴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하고, 발굴유물이 우리 역사를 알차게 채워주는 ‘또 다른 1차 사료’라는 점을 말해준다.

개발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매장문화재를 홀대하거나 경제적 손실을 들어 역사의 흔적의 훼손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