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계도 의존하지 않은 ‘달인 건축’
허술해 보이는 초석마저 견고
한국의 미(美),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 건축의 참된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전문 식견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연 경관과의 조화를 말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건축물은 주변을 지배하지 않으면서도 지세·숲·산천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다음으로 ‘질박’과 ‘여유’를 들 수 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절제된 아름다움은 한국 미술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요소다. 그래서 문화유산을 바라보면 담백한 맛이 나고 친근하며 편안하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는 우리나라 전통 미학을 ‘검이불루(儉而不陋,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는다)’라는 ‘삼국사기’ 속 백제 온조왕의 고사를 인용해 표현하기도 했다.
안성 청룡사 대웅전(보물 제824호)을 마주하면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 온다. 임진왜란 직후 좋은 목재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기에 전각이 지어진 탓에 심하게 휜 자연목을 기둥에 그대로 사용했다. 어느 한구석 다듬은 흔적이 없고 소박하며 친근하다.
모양도 제각각이고 굵기도 고르지 않다. 하지만 무질서하거나 난잡하지 않다.
곧게 뻗지 않았어도 힘찬 기운이 돌며, 그 힘이 주변을 압도하지 않는다. 제멋대로 같지만,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100t에 달하는 지붕과 공포를 수백 년간 떠받치고 있다.
대웅전을 지은 대목장은 그야말로 ‘건축의 달인’이었으리라. 자연 그대로의 원목을 사용해도 구조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는 장인으로서의 자신감을 이 기둥을 통해 마음껏 과시한 듯하다.
기둥을 받치는 초석에서도 우리 건축의 고갱이를 엿볼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돌을 사용했는데, 기둥과 마찬가지로 높이도 일정하지 않고 모양도 제멋대로다. 기둥을 앉힌 부분에도 손 하나 대지 않았다.
기둥 밑면은 그렝이질을 하여 초석 윗면의 모양대로 깎아 밀착시켰을 뿐이다. 허술한 듯 보이지만 견고하고, 대충인 듯해도 제대로다.
이들 초석과 기둥 위에 올린 공포와 가구에도 한국건축의 진수가 스며있다. 대목장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을 만들면서도 설계도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담긴 경험과 기억이 곧 설계도였던 셈이다.
무려 3천100여 개의 부재들을 레고(Lego) 쌓듯이 척척 쌓아올린 것이다. 참으로 경이롭다.
우리 문화유산에는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으며, 멋과 아름다움이 간직돼 있다. 대부분 수려한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채, 심신의 편안함을 주고 세월이 마지막 손질을 했기에 모나지 않았다. 최고의 장인이 만들어 예술적으로도 뛰어나며 상업적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기에 날림이 없다.
우리 문화유산이 지닌 이런 가치들을 안성 청룡사 대웅전에서 느껴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