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안보이는 1.5㎢ 모래섬
사막에 온 듯 색다른 풍광에
물결 따라 파인 독특한 문양
게·조개 등 지천에 생물 서식
‘해양보호구역’ 지정·보존중
2012년부터 체험관광 합법화
해사채취로 해안침식 가속탓
매년 줄어드는 ‘풀등’ 아쉬워

인천 옹진군 대이작도 남단에 위치한 ‘자연의 신비’ 풀등을 찾았다. 언덕 모양의 모래풀이라는 뜻을 가진 풀등은 밀물 때 물에 잠겨 사라지고 썰물 때 수면 위로 드러나는 모래섬이다.

국내 여러 해안에서 이같이 독특한 지형을 관측할 수 있지만, 면적이 1.5㎢에 달하는 이작도의 풀등은 크기에서 압도적이고, 유일하게 관광객이 직접 올라가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지난달 29일 오전 9시30분. 대이작도 작은풀 해수욕장에 대기 중이던 유선에 올랐다. 대이작도에서 7대째 살고 있다는 김유호(49) 선장이 모는 유선에 10여명의 관광객과 함께 탑승했다. 5분 동안 시원한 바람을 가르자 금세 풀등에 도착했다. 풀등의 표면은 일반 모래 사장보다 매우 단단했다. 발을 힘껏 굴러도 파이지 않을 정도였다.
물결을 따라 쌓이고 파인 모래는 풀등 표면 곳곳에 독특한 문양을 만들었다. 풀등 위에서 육안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풀등은 컸다.

이날 풀등을 탐사하는 데 주어진 2시간 동안 풀등을 모두 둘러보기가 어려웠다. ‘대이작도 주변해역 해양보호구역 시민모니터링’을 수행한 인하대 산학협력단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11월 조위가 136㎝일 때 풀등의 면적은 1.45㎢로 관측됐다.

모래가 드넓게 쌓여있는 풀등 위에서는 마치 사막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사막 양쪽의 푸른 바다가 만들어내는 풍광은 이작도 풀등이 아니면 느껴보기 어려울 듯했다. 이날 풀등에서는 다양한 해양 생물도 볼 수 있었다. 대이작도의 한 주민이 ‘맛(죽합)’을 캐고 있었다.

맛의 숨구멍을 찾아 삽으로 얇게 뜬 뒤 구멍을 따라 끝이 뾰족한 쇠막대기를 넣어 맛을 고정시켰다. 맛을 고정한 뒤 숨구멍 옆쪽을 파서 맛을 캐내는 방식이었다. 이 같은 방식으로 10여분 만에 길죽한 대나무 가지 모양의 맛을 4~5개 캐냈다.

이 일대가 생태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탓에 주민들은 당일 먹을 정도로만 조개를 채취한다고 한다. 주민이 캐는 조개 말고도 다양한 해양 생물의 흔적을 풀등 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풀등 곳곳에는 게가 파놓은 구멍과 구멍을 파느라 동그랗게 뭉쳐놓은 모래의 흔적이 있었다.

풀등 위에는 살아있는 작은 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기도 했다. 어른 주먹 크기의 게도 관찰됐다. 풀등 곳곳에 파여있는 웅덩이에서는 물고기가 있었다. 썰물 때 풀등 위에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가 웅덩이에 갇힌 것이다.

강한 바람이 불어 파도가 크게 치고 난 다음날 풀등에 오르면 웅덩이에 광어 등 큰 물고기도 있다고 이곳 주민들은 알려줬다. 이럴 때 작살을 들고 풀등에 와 물고기를 손쉽게 잡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풀등에 서식하는 생물자원은 수시로 변한다.

태풍이나 조류의 움직임에 따라 풀등이 이동하고, 서식하는 생물에도 큰 변화가 찾아온다. 이작도 주민의 말을 종합하면 1990년대 말 태풍이 불고 난 뒤 명지조개, 모시조개, 비단조개 등이 나타났다. 그렇게 2~3년이 지나면 이런 조개를 잡아먹으러 골뱅이(큰구슬우렁이)가 풀등 위에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고 2년 뒤 이른바 ‘오발이’라고 불리는 불가사리가 골뱅이를 잡으러 풀등에 모습을 드러낸다. 불가사리가 풀등 위에 창궐했던 2002년께에는 검은 불가사리가 풀등 위를 뒤덮어 흉물스러웠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 같은 불가사리를 잡아다가 말려 죽였는데, 그렇게 죽이고 나도 끊임없이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이 같은 풀등 위 서식 생물의 변화는 일정 주기로 반복된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이 같은 생물 변화와 관계없이 항상 풀등을 지키는 것은 일명 ‘빛조개’ ‘떡조개’로 불리는 조개들이다. 20㎝ 이상 깊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어떤 천적의 공격에도 살아남아 풀등을 지킨다고 한다.

이곳 풀등은 새우, 꽃게 등 갑각류의 산란지로 활용되는 중요한 기능도 한다. 해양생물의 서식지로서 어족자원과 생태계를 보전하는 역할도 한다. 또한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해 해양생물과 이작도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해양생물의 서식지이자 수려한 풍광을 갖춘 풀등은 관광상품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풀등 위를 관광객이 직접 오르는 ‘풀등관광’이 합법화된 것은 불과 3년 전인 2012년이다. 이때부터 1만원만 내면 주민이 모는 유선을 타고 풀등 위에 오를 수 있다.

풀등 유선 운영이 합법화되기 이전 음성적으로 행해질 때는 일부 관광객만 비싼 가격을 주고 풀등에 올랐다고 한다. 지금은 풀등이 이 일대 섬 관광패키지 상품에 포함돼 많은 관광객을 섬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이날이 토요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이작도뿐만 아니라 승봉도 등에서도 어선을 타고 100여명의 관광객이 풀등에 올랐다.

풀등을 포함한 대이작도 주변 해역은 해양생태계와 아름다운 해양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이작도 인근 해역에는 해수에 완전히 잠겨서 자라는 식물인 ‘잘피’ 등도 서식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이 발견된 이작도 인근 해역은 해양경관 보존 필요성이 크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이 일대 경관이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천지방해양항만청 등에서 용역기관을 선정해 매년 대이작도 일대 해양보호구역 모니터링을 진행하는데, 풀등의 면적이 매년 줄어드는 것이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조위가 136㎝일 때 풀등의 면적은 1.45㎢로 관측됐는데, 이는 2008년 1.79㎢에 비해 0.34㎢ 감소한 것이다.

5년 사이 풀등 면적이 18% 감소한 셈이다. 인하대 산학협력단은 지난해 모니터링 보고서에서 “해사 채취가 재개된 2007년 이후 대이작도의 해안침식이 심화하고 있다”며 “2013~2017년까지 연간 600만㎡의 해사 채취가 계획돼 있어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풀등유선 김유호 선장은 “어릴 적에는 바다에서 수영할 때 풀등 뒤편이 아예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보인다. 그만큼 침식이 많이 됐다는 것”이라며 “주변 섬 등에서 수도권 골재에 필요한 80% 수준의 모래를 가져가면서 풀등의 모래도 사라지고 있다. 안타깝다”고 했다.

/글 = 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 ·사진 =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