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해경에 출항신고후 승선
납작 원기둥 모양 ‘통발’ 조업 시작
첫 틀 건졌지만 ‘가구’ 못채워 실망
아침 ‘꽃게 라면’ 달콤한 속살 ‘별미’
12시간동안 24회 작업 20가구 건져
“中어선·북한군 조용히 지나갔으면”


옹진군의 바다는 과거 조기와 민어가 넘쳐나고 고기잡이 배가 몰려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파시의 무대이기도 했다. 더 이상 파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됐지만, 바다에 의존하는 삶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파시의 주인공이 됐던 어종 대신 꽃게와 홍어·다시마 등 다른 수산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옹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바다만큼 믿음직한 보물은 없다. 옹진군의 살림을 책임지는 수산자원 가운데 가장 으뜸은 바로 꽃게다. 잡히는 양으로 보나 팔리는 액수로 보나 꽃게가 어민들의 주요 소득원이다.

꽃게 하면 연평도 꽃게를 가장 알아준다. 지난 5일 올해 가을 꽃게 조업이 시작된 연평도를 찾았다. 만선의 꿈을 품고 꽃게잡이 조업에 나서는 통발 어선에 몸을 실었다.

■AM 05:10

지난 5일 오전 5시 10분께 가을 꽃게조업이 시작된 인천시 옹진군 대연평도의 연평해양경비안전센터. 하얀 장화를 신은 7.93t급 통발어선 수광호의 오현석(46) 선장이 가장 먼저 센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센터 밖은 아직도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전날 꽃게조업을 마치고 들어가려는 선장 오씨를 붙잡고 동행 취재를 요청하니 흔쾌히 허락했고 약속을 잡아 이곳에서 만났다. 수광호 선장이 들어오자 태평호와 길영호 등 다른 통발어선 선장도 잠시 뒤 안전센터를 찾아왔다. 출어에 앞서 ‘카드’라 부르는 출입항신고서를 받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선장들은 반가운 표정으로 날씨와 전날 조업량 등을 서로 궁금해했다. 조업개시 시각인 5시 40분을 5분 남겨두고 센터 직원은 ‘음주운전 하지 말고, 조업구역을 이탈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애타게 기다리던 ‘카드’를 나눠줬다. 선장들은 카드를 받아들고 각자 부두에 묶어둔 배로 향했다.

부두에 도착하니 오전 5시 38분이 됐다. 비가 내리던 당섬 선착장에는 출어를 대기 중인 꽃게 통발어선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수광호 선장과 함께 어선에 올라타려던 순간, 바닥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선장이 말했다. 조심했지만 어선 난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발이 미끄러졌다. 하마터면 바다에 빠질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AM 05:40

“출항!” 배에 오른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브릿지에 오른 선장 오씨는 엔진의 출력을 높이고 매캐한 연기를 내뿜고는 방파제를 빠져나갔다. 이날은 모두 통발 어선만 조업에 나섰다. 대연평도에서 4척, 소연평도에서 2척이 꽃게조업에 나섰다.

수광호가 부리는 통발 어구는 납작한 원기둥 모양의 어구에 꽁치·고등어·멸치 등 미끼를 넣어 꽃게를 꾀어내 잡는 방식이다. 통발의 입구는 들어오기는 쉬워도 나오기는 어려운 구조로 돼 있다. 연평도의 꽃게잡이 어선 대부분은 통발이 아닌 직사각형틀 그물을 바다에 내려 떠다니는 꽃게를 잡는 닻자망 어선이다.

물살에 떠밀리는 꽃게를 잡는 ‘뺑뺑이’라고 불리는 안강망 어선도 있다. “꽃게는 통발이 최고!” 연평도 꽃게 선장으로만 19년 경력의 오씨는 배 안에서 통발로 잡은 꽃게 자랑을 쉬지 않았다. 오씨는 통발로 잡은 꽃게가 가장 품질이 좋다고 자신했다.

그물에 걸려 며칠씩 있어야 하는 다른 어구와 달리 통발로 잡는 꽃게는 스트레스를 덜 받아 살이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통발로 잡은 꽃게는 물밖에 노출돼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 대부분 살아서 위판장까지 간다.

■AM 06:30

“자 이제 다 왔습니다.” 당섬 선착장에서 남서쪽으로 뱃머리를 고정하고 50여분을 계속 항해하자 전날 어구를 설치해 두었다는 장소에 도착했다. 비는 그친 상태였다. 멀리 초록색 부표가 보이고 배가 서서히 속력을 줄이자 선장을 제외한 5명의 선원이 일제히 담배를 꺼내 물고는 갑자기 움직임이 바빠졌다.

선원 하나가 노련한 솜씨로 부표를 낚아채자 선장은 양망기를 작동시켰다. 이내 닻이 물 밖으로 올라왔고 통발도 따라 올라왔다. 그러나 기대를 품고 건져 올린 통발에는 꽃게 1마리가 전부였다. 뒤따라 올라오는 통발도 마찬가지였다. 오씨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그는 “전날 미끼로 쓴 꽁치가 떨어져 멸치를 미끼로 썼는데, 멸치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라며 오늘 조업을 걱정했다.

수광호는 연평어장 한가운데에 통발 어구 20틀을 설치했다. 어구 틀에는 900m길이의 밧줄에 110개의 통발이 일렬로 매달린다. 110개의 통발을 올리는 데는 20분 정도 걸렸다. 첫 틀을 다 건져 올렸지만 ‘가구’ 하나도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 꽃게를 담는 큰 직사각형 플라스틱 바구니를 배에서는 ‘가구’라고 불렀다.

■AM 07:55

선장이 물을 끓이며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아침 메뉴는 언제나 ‘꽃게 라면’이다. 선원들과 함께 배 뒤편에 옹기종기 앉아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붉게 변한 꽃게 반쪽을 집어 들었다. 껍질은 단단했고, 안에는 살이 꽉 들어차 있었다. 결이 살아있는 꽃게 속살은 달콤했다.

선장은 “예년 같으면 9월 초에 잡히는 꽃게는 살도 없고 껍질도 무른 물렁 게가 대부분이어서 상품가치가 없었다”며 “꽃게어선 선장 19년 동안 9월초 꽃게가 이렇게 좋은 경우는 처음 겪는 일이다”고 말했다. 아침을 먹고 나니 곧바로 작업이 시작됐다. 이날 어구를 걷었다 던지기를 24차례 반복했다.

■PM 05:30

“조업 끝.” 기상이 나빠졌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배가 출렁이자 선장은 이날의 조업을 마치기로 했다. 당섬으로 복귀하는 동안 조업이 끝난 갑판에서 선원들은 정리 작업을 시작했다. 어구들을 모두 제자리에 정리하고 갑판 위를 바닷물로 깨끗하게 청소했다.

오후 6시 30분 당섬 선착장에 도착하자 꽃게 운반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꽃게 20가구와 박하지 1가구를 운반선에 넘겨줬다. 운반선은 곧바로 인천으로 출발해 옹진수협위판장에 풀어 놓는다. 연평어장에서 걷어 올린 꽃게는 대부분 옹진수협에 집결해 거래가 이뤄진다.

운반선도 나름의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꽃게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최대한 천천히 운항해야 한다. 오후 7시 당섬 선착장을 출발한 운반선은 새벽 1시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한다.

수광호 오현석 선장은 “19년을 꽃게와 살았다. 꽃게 때문에 결혼도 했고 꽃게가 안 잡힐 때는 집도 팔아봤고, 나를 웃게도 울게도 하는 것이 꽃게”라며 “ 중국어선도 북한군도 올 가을에는 조용히 지나가 꽃게 조업에만 전념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 꽃게 조업방식

꽃게잡이 통발 어선에는 배를 조종해야 하는 선장을 제외하고 최소 선원 다섯명이 있어야 한단다. 한사람이라도 부족할 경우 조업 시간은 배 이상 걸리게 된다. 선원들의 역할은 크게 5가지로 나뉜다. 우선 ‘앞재비’라고 부르는 선원은 뱃머리에서 계속 통발을 건져 올린다.

앞재비는 걷어 올린 통발 주둥이에 묶인 끈을 풀고 잡힌 꽃게를 분류기에 털어 넣는다. 그 다음부터는 ‘잇감재비’가 통발을 잡는다. 배에서는 미끼를 ‘잇감’이라 불렀다. 잇감재비는 빈 통발에서 미끼가 들어있는 상자를 꺼내 헌 미끼를 빼내 버리고는 다시 새 미끼를 채워 이를 통발에 끼워 넣는다.

미끼 상자를 꺼내 새 미끼를 채워 통발에 넣는데 5초 이상 걸리면 안 될 정도로 손이 빨라야 한다. 앞재비가 쏟아낸 꽃게를 크기별로 분류해 담는 역할을 맡는 선원도 있다. 이 선원은 통발에서 털어낸 게를 크기에 따라 두 종류로 나눠 가구에 담는다. ‘박하지’나 소라 등 다른 어종도 가끔 올라오는데 이 역시 따로 분류해 담는다.
새 미끼를 끼워 넣은 통발을 갑판에 쌓는 역할을 맡는 선원도 있다. 그물이 엉키지 않아야 한다. 또한 비뚤어지거나 쓰러지지 않도록 안쪽부터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는 것이 이 선원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마지막 ‘줄재비’는 그물줄이 잘 풀리도록 동그랗게 말아서 갑판 한곳에 정리하고 또 새 미끼를 채운 통발을 바다로 던지는 역할을 맡는다.

/글·사진 =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